기억나지 않음, 형사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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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나온 수많은 미스터리 소설 중 가장 많은 호응을 받은 작품 중 한 편이 <13.67>일 것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홍콩에서 이런 추리물이 나왔다는 것에 놀랐다. 당연히 이 놀람은 책 구입으로 이어졌다. 그 다음은 늘 그렇듯이 책장 속으로 사라졌다. 언젠가 읽겠다는 의지와 함께. 그러다 조금 더 얇은 책이 또 한 권 나왔다. 일본의 시마다 소지 추리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인 이 소설 말이다. 작가에 대한 호기심과 그렇게 많지 않은 분량이 나를 유혹했고, 그 유혹에 넘어가 다른 수많은 책을 남겨둔 채 읽었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엄청난 작품은 아니지만 글을 잘 쓴다는 느낌이 가득하다.

 

방에 누워 있는 시체 두 구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이 둘은 부부다. 여자는 임신까지 한 상태다. 살인자는 잔혹하게 여러 번 여자의 배를 찔렀다. 밖으로 드러난 죽음을 둘이지만 뱃속의 아기까지 계산하면 셋이다. 이 현장에 대한 이야기와 약간의 호러 분위기를 풍기는 장면 하나로 문을 연다. 그리고 숙취에 시달리는 형사가 차 안에서 깬다. 그의 머릿속에는 둥청아파트 살인사건이 스쳐지나간다. 서장에 나온 남편 정위안다와 아내 뤼슈란이 남편의 불륜 상대였던 유부녀의 남편 린젠성에 살해당한 사건이다, 그는 이 사건에 위화감을 느낀다. 이때만 해도 그저 그런 평범한 도입부다. 그런데 이것이 순식간에 변한다. 그것은 쉬유이 형사가 자신의 근무처에 가서 시간을 확인한 그 순간이다. 현재는 2009년 3월 15일이다. 그가 기억하는 연도는 2003년인데.

 

단기 기억상실증이라고 하기에는 6년이란 기간이 너무 길다. 이때 한 여자가 나타난다. 쉬유이와 인터뷰하기로 한 시사정보지 <포커스>의 기자 루친이다. 그녀가 나타난 이유는 둥청아파트 살인사건이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사건 당시 피해자 가족인 뤼후이메이와 담당형사 쉬유이를 인터뷰하기 위해서다. 둘은 차를 타고 뤼후이메이의 집으로 간다. 피해자의 언니인 그녀는 원래 같은 아파트 다른 층에 살았고, 이 부부의 시체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 부부의 딸을 현재 자신의 딸로 키우고 있다. 좋은 이모다. 이때만 해도 평범한 진행이다. 작가가 조각을 하나씩 흘리고 있다.

 

이 인터뷰 전에 린젠성의 용의자에서 살인자로 바뀐 사건 하나가 더 소개된다. 그것은 린젠성이 도망가다 차로 사람을 치어 죽인 사건이다. 잔혹한 부부 살인으로도 충분히 대중의 시선을 끌 수 있는데 이 사건이 더해지자 대중의 관심도는 더 높아진다. 영화로 만들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사건과 비교되는 하나의 실화가 있는데 그 유명한 인육만두 사건이다. 그냥 보면 너무나도 뻔한 사건인데 여기에 위화감을 느끼는 형사가 있다. 쉬유이다. 사라진 시간에 대한 회상보다 그는 아친이라고 부르게 된 루친이와 함께 사건 당시 관계자를 찾아다닌다. 린젠성의 아내와 사건 당일 만나기로 한 아옌이란 남자다. 쉬유이의 머릿속에서는 계속 아옌이라는 남자가 걸린다.

 

현재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사이사이에 작가는 짧은 단락을 넣어 단서를 하나씩 제공한다. 이 단락들은 실제 있었던 사실이다. 가끔 작가가 이 단락을 가지고 트릭을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은 아니다. 이 단락에 화자는 바뀌지만 주요한 등장인물은 두 명이다. 쉬유이 형사와 아옌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연 하나가 반전처럼 다루어진다. 읽으면서 범인에 대한 윤곽은 쉽게 잡을 수 있었다. 추리소설을 자주 읽다가 발견한 몇 가지 패턴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패턴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 풀어놓는 단서와 정밀한 구성의 조화다. 찬호께이는 이 부분에서 어느 정도 성공했다. 어렵게 글을 쓰지 않아 쉽게 읽히고, 시간과 심리학을 이용해 반전을 펼치기 때문이다. 누구는 뻔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예측가능한 반전을 보여주면서 오히려 현실성을 높였다. 마지막에 모든 것을 설명하는 부분을 구성 속에 녹이고, 간결하고 분명하게 만들었다면 훨씬 멋진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의 단상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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