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 버티고 시리즈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홍성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2월
평점 :
품절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작품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처럼 일상에서 시작하여 잔혹한 파국으로 이어진다. 사실 얼마 전에 읽은 <캐롤>을 생각하면 같은 작가가 쓴 것이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1950년대 미국의 작은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일상의 비일상을 담고 있고, 그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심리를 아주 세밀하게 드러낸다. 어떻게 보면 약간 지루할 수도 있게 느껴지지만 그 감정과 심리를 차분하게 따라가면 우리가 보고 있는 일상의 균열이 이렇게 표현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빅터. 부모에게 물려받은 자산으로 조그만 출판사를 운영한다. 그런데 이 출판사가 내는 책들이 수익을 내지 못한다. 유산으로 이 손실을 메꾼다. 그는 결혼했다. 아내와 딸이 있다. 이렇게 적고 보면 단란한 가족이 떠오르지만 실제 이 가족은 찢어져 있다. 그 분열은 아내 멜린다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녀는 다른 남자들을 연인으로 두고 있다. 남편도 알고 있지만 이것을 은연중에 묵인한다. 이 묵인은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을 더욱 대담하게 만들고, 그 애인들도 거침없이 그의 집으로 찾아오게 만든다. 그렇다고 빅터가 다른 여자를 애인으로 두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빅터의 심리를 하나씩 표현하면서 그에게 동조하게 만든다.

 

뉴욕 근교의 작은 마을은 이웃들과 사이가 좋다. 작은 파티에 이웃을 초대해 함께 시간을 보낸다. 새로운 이웃이 나타나면 그들을 공동체로 초대한다. 밖에서 본다면 이 이웃들은 화목하고 즐겁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그 시작 중 하나는 빅터가 아내의 애인에게 뉴욕의 한 살인 사건을 자신이 저지른 것이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냥 무심코 보기에는 단순한 장난처럼 보이지만 그 상대방은 생명의 위험을 느낀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마을에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조용한 마을에 작은 파문을 만든 것이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실제 그가 살인을 저지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바람피는 아내를 둔 남편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혼이다. 그런데 빅터는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 나중에 아내에게 이혼을 요청하는데 이때 꽤 많은 위자료를 주는 것으로 제안한다. 그냥 생각할 때 위자료 없이도 이혼이 가능할 텐데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 이 부분은 지금도 완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가 바란 것이 아내와의 재결합이라면 다른 방법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럼 다른 방법은 뭘까? 아내를 깊은 절망으로 빠트리는 것이다. 그가 겪은 고민과 고뇌와 상실감 등을 단번에 회복할 수 있는 수준까지. 하지만 그는 이렇게 하기에는 치밀한 준비정신이 없다. 그가 보여준 침착함과 관대함(?)은 이 가능성도 지워버린다. 그러다 우발적인 하나의 죽음이 차가운 이성의 바닥 밑에 있던 분노와 폭력성을 일깨운다.

 

하나의 죽음 이후 빅터를 둘러싼 이웃들의 반응은 제각각이고, 실제 감정과 다르게 표현된다. 그들은 빅터가 살인자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자식들에게는 그를 살인자라고 말한다. 이것이 드러나는 것은 바로 딸과의 대화 속이다. 실제 그를 의심하지만 밖으로는 표현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이웃이 살인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 빅터와 멜린다의 관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멜린다처럼 그를 살인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가 저지른 것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탐정을 고용하기도 한다. 빅터가 금방 알아채지만. 이런 관계 속에서 부부의 틈은 더 벌어지고, 자신들의 감정을 속인 채 부부의 외양을 유지한다. 하지만 이 관계는 불안하다. 빅터의 차가운 이성이 흩트리질 때면 더욱 더. 평온하고 고용한 일상은 모두가 원하는 것이지만 이 거짓 평화 속에 숨겨진 감정들은 아주 큰 태풍을 몰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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