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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자꾸만 무뎌지는 나를 위해
강레오 지음 / 예담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요리사 강레오에 대한 나의 인상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를 세상에 알린 <마스터 셰프 코리아>의 심사위원일 때 받은 선입견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 속 그의 행동이 고든 램지를 따라했다고 생각했고, 과연 그가 그들을 그렇게 가혹하게 평가할만큼 내공이 있는지 의문이었다. 어쩌면 그 당시 방송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유명 요리사 중 한 명 정도로, 혹은 과대평가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었다. 이것은 그를 TV라는 매체로 짧게 보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물론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추구하는 삶과 요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예상한 것보다 깊은 이야기가 많아 그에 대한 선입견을 많이 지우게 되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전해지면서 많은 말을 만들고 있다. 최현석 셰프를 비판한 부분이 문제가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최현석의 예능감과 요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좋아하는데 이것이 강레오의 눈에는 좋게 보이지 않은 모양이다. 혹자가 말한 것처럼 영국 유학파의 자존심이 발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나의 오독이라면 사과를 먼저 하고 싶다. 하지만 이런 비판과 논쟁이 나쁘게만 다가오지 않는다. 오해가 있으면 풀면 되고,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고, 입장 차이가 있다면 그것을 인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언론에서 이것을 부풀려 자신들의 클릭수 올리는데 자극적으로 활용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둘의 관계를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왈가왈부할 것은 아닌 듯하다.
요리사 강레오. 사실 그의 몇몇 런던 고생담은 이미 방송을 통해 몇 번이나 나왔다. 솔직히 신선하지 않았고, 가슴 깊이 와 닿지도 않았다. 몰라서 그런데 그가 배웠다는 요리사들이 얼마나 대단하지 모르다보니 살짝 의심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의 고생에 약간의 과장이 있다고 해도 몇몇 방송에서 그가 보여준 행동과 지식은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 같다. 최근에 본 방송 하나에서 그 이전에 다른 요리사가 보여준 행동이나 표현과 완전히 달랐다. 이것은 단순히 방송을 좀더 많이 한 것 차이가 아닌 요리와 재료에 대한 깊은 이해의 차이로 나에게 다가왔다.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그가 얼마나 한식과 재료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이것은 다른 요리 프로그램에서 셰프들이 보여주는 지식들에서도 잘 드러난다. 폭과 깊이는 단숨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빠르고 가볍게 읽으려고 생각하고 펼쳤다. 그런데 가슴에 와 닿는 문장이나 생각들이 많았다. 그가 힘들게 고생한 것과 이런 저런 경험이 나의 시선을 끈 것이 아니라 그가 추구하는 삶과 요리를 대하는 태도와 생각들이 시선을 끌었다. 우리가 흔히 무심코 하는 말이나 행동 속에서 그 잘못을 끄집어낼 때는 더 했다.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역시 ‘집밥’이다. 언제부터인지 ‘집밥’의 환상이 만들어지고 있다. 식당에서 집밥을 찾고, 엄마의 손맛과 비교하는 것이다. 외지에 나와 오래 산 나에게 솔직히 집밥의 기억은 희미하다. 가끔 가서 먹는 밥이 맛있지만 다른 식당에 가서 이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적이 거의 없다. 강레오의 지적처럼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 책 속에는 강레오의 요리와 식당 운영 등에 대한 철학이 잘 나온다. “요리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식재료들을 각각의 특성에 맞게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조리해야 궁극의 맛을 끌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흐트러지지 않는 기본을 갖추는 일이다. 기교나 개성은 그 다음에 스스로 쌓으면 된다.” 그런데 이 기본이 결코 쉽지 않다. 요리 방송을 볼 때 요리관련 전문가나 요리사가 이 부분을 설명해줄 때 깜짝 놀랐는데 이것이 기본이었으니 그렇게 놀랄 일이 아닌 모양이다. 식당과 화장실의 청결문제나 요리사가 자신이 요리한 것을 먹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은 약간의 논쟁이 생길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수긍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요리사란 직업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다. 한 학생이 그에게 스타 셰프가 되는 방법을 물었을 때 해준 대답은 정확했다.
강레오는 요리사를 좋아하기 때문에 평생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이 요리사가 아니라 좋아하기 때문에 평생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데 사람들은 반대로 생각한다. 이 차이가 삶에서 어마어마한 차이를 만든다. 그가 1만 시간의 법칙을 믿지 않는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1만 시간이 충분조건이 아닌 작은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에는 그의 삶도 하나씩 흘러나온다. 방송 중 에피소드가 아닌 살면서 수술을 해야 했던 일이나 자기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것을 두려워했던 치열한 경쟁 등 말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좋았던 것은 역시 그의 열정과 노력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곳곳에 드러나는 것이다. 제목처럼 자꾸만 무뎌지는 나를 바로 세우는 것은 끊임없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강레오의 삶과 철학뿐만 아니라 요리사란 직업 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요리사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