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의 황제
김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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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흥미로운 작품집이다. 오랜만에 이런 종류의 소설들을 읽었다. 현실과 거짓을 섞어 재미난 서사를 만드는 과정이 아주 뛰어나다. 어떤 대목에서는 아주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 명의 멋진 이야기꾼이 탄생했다. 소재를 선택하고, 그것을 요리하는 과정에서 강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기발한 발상은 멋진 상상으로 이어지고 반전으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패러디는 노골적이라 단숨에 알 수 있고, 이로 인해 생긴 이야기는 그럴 수도 있지 하는 감탄을 자아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바로 역사와 현실의 문제들이다. 이것을 포장하는 수단으로 다양한 패러디와 역사의 사실을 빌려왔다.

 

아홉 편의 단편은 읽는 재미를 준다.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이다. <페르시아 양탄자의 흥망사>에서 한국과 이란의 역사를 엮었는데 공통점들에 시선이 간다. 실제 역사를 살짝 비틀어 거짓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가장 궁금한 것은 실제 있지도 않은 양탄자의 존재다. 그럴 듯한 이야기 뒤에 거짓이 숨어 있고, 다시 그 뒤에 현실이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다. <교육의 탄생>도 역시 역사와 연결된다. 그 역사는 바로 국민교육헌장이다. 학창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읽고 외우게 만들었던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가상의 음모론으로 풀어낸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아니라면 왜 그렇게 열심히 외우게 했겠는가.

 

<라면의 황제>는 라면이 금지된 시대를 무대로 라면에 대한 향수와 찬사를 담아내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라면의 문제점을 극대화해서 금지식품으로 만들었고, 이 때문에 생긴 비밀조직과 이들이 숭배하는 인물을 가상으로 이야기 속에 끌고 들어왔다. 이것 역시 현실에 대한 패러디와 역설을 담고 있다. 읽는 동안 라면 생각이 간절했다. <2098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제목부터 패러디다. 현재 유전자 공학을 복제가 아닌 역복제로 설정했는데 이 과정에 유전자 조작을 통해 불멸을 이룬다. 김호현이란 위대한 과학자를 조사하고 그의 과거를 보여주는데 그 역발상과 마지막 장면이 상당히 긴 여운을 준다.

 

<지상 최대의 쇼>와 <경이로운 도시>는 한 편으로 엮어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외계인이 등장한 곳은 같은데 전작이 수많은 의문을 남기고 사라졌다면 다음 작품은 그 의문이 어떻게 현실에서 일어났는지 보여준다. 전작이 우리 시대의 고용문제를 뒤틀어서 다뤘다면 후작은 그 결과를 보여준 후 인간들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인지,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어떻게까지 자신들의 의식을 왜곡하고 조작하는지 보여준다. 읽으면서 가장 섬뜩한 작품도 바로 <경이로운 도시>다. <개들의 사생활>이 순간적으로 보여줬던 섬뜩함을 넘어선 장면들이 이 작품에서는 덤덤하게 그려낸다. 그래서 더 무시무시하다. 그리고 반전이 펼쳐진다.

 

<어느 멋진 날>의 한 인물은 <교육의 탄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의식과 조작을 바탕으로 깔아놓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비극적인 사실을 들려준다. 역시 르포 형식을 빌려 이야기를 풀어내고, 거짓 너머의 사실을 살짝 숨긴 채 보여준다. <이제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도 역시 현실의 문제를 담고 있다. 이 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가상의 단체를 만들고, 역사를 빌려와 뒤섞어 그럴 듯하게 포장한다. 문제를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고 이를 자신이 바라는 대로 포장할 뿐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지 않은 현실을 아주 멋지게 풍자했다. 전체 이야기에서 조금 힘이 딸리는 부분이 있지만 어쩌면 이것은 계속 비슷한 이야기를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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