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폭격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맛집 폭격>이란 제목을 보고, 식당이란 단어를 보고, 배명훈이 맛집 기행에 대한 소설을 썼구나 하고 착각했다. 실제 이 소설의 첫 부분을 읽었을 때만 해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마살라 도사란 인도 음식을 이렇게 맛깔나게 설명하는데 어떻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갑자기 미사일 공격 이야기가 나오고, 에스컬레이션 위원회 등이 등장하면서 이 환상은 깨지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읽어오던 배명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모호하지만 재미나게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그의 소설들이 한두 편씩 떠올랐다.

 

띠지에 ‘제대로 맛있는 소설’ 문구가 있다. 이 문구가 최소한 주인공 민소가 식당과 그곳의 음식을 설명할 때는 딱 들어맞다. 맛집을 가끔 찾아가는 나에게 실제 이 집들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있다면 당장 달려가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 추억과 기억들이 풀려나왔을 때 나의 기억도 같이 친구와 함께 맛집을 돌아다녔던 혹은 소개로 갔던 일들이 불쑥 떠올랐다.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다. 요즘 과거의 추억들이 불쑥 떠올라 감상에 젖을 때가 가끔 있다. 이 소설도 음식과 같이 간 친구에 대한 기억으로 이어졌다.

 

내가 소설을 읽기 전 ‘맛집’에 관심을 두었다면 실제 내용은 ‘폭격’에 있다. ‘맛집 폭격’은 하나의 설정이고 설명을 위한 장치다. 이 폭격은 가상의 어느 나라에서 한국으로 하루에도 수십 발씩 미사일을 발사하는 미래의 일이다. 아직 남북한은 분단 중이고, 외세는 한국의 미사일 개발을 억제시키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적국이 날려 보내는 미사일은 지구 반대편에서 온다. 가깝다면 전면적으로 발전할 수 있지만 지리적 거리와 미사일 폭격 위치 등이 선전포고로 이어질 정도는 아직 아닌 상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폭격이 전면전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 바로 에스컬레이션 위원회다. 폭격의 위치나 강도 등을 조사하고 조정하는 조직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은 민소다. 그는 이 위원회에 소속되어 있지만 근무처가 쉽게 출입할 수 있는 출입증 발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 기이한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낙하선으로 한 여성 후배가 들어온다. 윤희나다. 인맥과 경력을 쌓기 위해 이 조직에 왔지만 알 수 없는 민소의 매력과 상황에 발이 묶인 인물이다. 낙하산답게 승진도 빨라 곧 민소의 팀장이 된다. 처음 그녀가 팀에 왔을 때 무능력할 것이란 예상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당히 유능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녀의 수고와 능력만큼 이 둘의 사이는 가까워진다.

 

이 소설의 강점은 역시 배명훈의 국가에 대한 통찰이다. “애초에 국가가 전시 태생이기 때문이었다. 평시 조직을 전시에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 조직을 평시에도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었다.”이 말은 이 소설 속에서 국가의 조직이 국민을 상대로 어떤 일을 하는지 아주 잘 보여준다. 특히 전쟁에 대한 해설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국가에서 전쟁을 수행하게 되면 전쟁을 지시하는 인물과 직접 싸우는 사람들로 나눠지는데 이 전쟁을 가장 바라는 사람들이 바로 뒤에서 전쟁을 시작하고 지시하는 사람이란 것이다. 물론 이로 인해 생기는 이익을 가장 많이 생기는 사람도 바로 그들이다. 너무 상식적인 해설인가.

 

왜 이렇게 무의미한 미사일 폭격을 계속 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학살이나 전면전을 위한 것도 아니고, 명확한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미사일 폭격 중 이상한 점이 있다. 바로 민소의 맛집들이 그 정밀 타격의 대상 중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누구나 가는 맛집이라면 문제가 없을 텐데 누군가와 늘 함께 한 맛집이 폭격의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 어떤 곳은 용산에 위치했고, 조금만 실수하면 미군 부대에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것이 황당한 가능성으로 이어지고, 논리적으로 맞아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한다.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음모가 고개를 점점 앞으로 내밀기 시작한다.

 

많지 않은 분량이라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이전보다 건조한 문장이라 집중을 해야 한다. 칸트나 클라우제비츠나 막스 등의 저서를 인용하면서 전쟁과 국가 등을 해석하려고 한다. 이 해석이 흥미로운데 소설의 설정과 전개에 아주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 단순히 맛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민아리와 민소의 아주 과격한 연예소설로 읽을 수도 있다. o(이응)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두 사람의 추억이 정치 현실 사이에 위태위태하게 놓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낙하산 인사지만 민소에게 호감이 있고, 그의 특이한 능력을 좋아하는 윤히나가 있다. 언어유희와 열린 결말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데 묘한 여운이 있다. 아직 이런 불명확한 이야기가 완전히 나를 사로잡지는 못한다. 아니면 나의 이해력이 부족하거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