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사람 - 42년간의 한결같은 마음, 한결같은 글쓰기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시인 정호승을 처음으로 만난 것은 그의 대표작이기도 한 <서울의 예수>였다. 제목은 명확하게 기억하는데 이 시집을 끝가지 읽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후 다시 만난 것은 안도현의 <연어>가 성공한 후 비슷한 풍으로 나왔던 <항아리>나 <연인> 등이었다. 이때 정호승은 시인이 아니었다. 그러다 다시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란 산문집으로 다가왔다. 이 변화가 그 당시는 조금 어색했다. 시인이 동화풍의 글을 쓴다는 것에 약간의 거부감도 있었고, 그 내용에 특별한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잘 몰랐기에 생긴 일들이다. 그런데 이번에 42주년 시인 생활을 담은 개정판이 새롭게 나왔다. 다시 시인으로 돌아온 것이다. 물론 그가 시인이 아니었던 적은 없다. 단지 나의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얼마 전 도종환의 시선집 <밀물의 시간>을 읽었다. 그의 시집을 출간 순으로 놓고 그 속에서 몇 편의 시를 뽑았다. 발표 순이다 보니 그의 시풍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굴곡진 그의 삶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시선집은 시집 발표순으로 편집하지 않았다. 출처도 표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인의 작품을 시 그 자체로 이해하고 분류해야 된다. 시어의 선택이나 묘사 등을 보고 쉽게 그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그것이 나만의 생각인지 아닌지 의문이 생긴다. 평론가들의 해설이 중요한 변화를 알려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바라는 바는 아니다. 시를 읽으면서 가장 많이 경계하는 것이 상징의 주입 등으로 고착될 시의 의미와 해석이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시들이 있다 보니 개인적 취향을 탈 수밖에 없다. 시인이라면 조금 다르겠지만 집중도도 다르다. 비교적 쉽게 머리와 가슴으로 와 닿는 시가 있는 반면 무슨 시인지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시도 적지 않다. 최근 가능한 하루에 한 편의 시를 읽고자 노력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것이 시다. 그것은 길이와 상관이 없다. 눈앞에 그려지는 풍경 뒤에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몇 번을 읽는 경우도 허다하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시에 대한 나의 내공은 아직도 한참 부족하다. 그럼에도 가슴과 머리는 시인이 그려내고 보여준 시어들에 잠시 동안 머물다 간다.

 

그에게 희망은 ‘희망을 가진 사람들은 불행하고 / 희망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더 불행하다’<밤길에서>는 불행의 가감으로 다가온 듯하다가 ‘내 지금까지 결코 버리지 않는 게 하나 있다면 / 그것은 희망의 그림자다’<희망의 그림자>처럼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삶을 말한다, 시어였던 것이 제목으로 변하는 순간도 시들 속에서 보이고, 같은 제목도 몇 편 나와 다른 분위기의 시들로 나의 가슴을 흔들어놓는다. 아버지에 대한 시들은 가깝고도 먼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키고, 슬픔을 노래하고, 기다림을 표현할 때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순간도 생겼다.

 

기독교 신자라는 생각을 하고 읽었는데 어느 순간 선문답 같은 시가 나와 당혹스러웠다. 예수와 고 김수환 추기경이나 명동성당을 소재로 시를 썼을 때와 절이나 부처 등이 소재로 등장할 때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잠시 고민되었다. 단지 있는대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나의 마음이 흐려 그것을 방해한다. 그리고 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사물의 모습은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햇살과 한몸을 이루는 기쁨만 있을 뿐 / 이슬에게는 슬픔이 없다’<이슬의 꿈>는 인식의 전환을 불러왔다. 고착된 생각을 벗어던진 시인의 시선은 그래서 반갑고 재미있다.

 

‘나는 이제 벽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 벽을 타고 오르는 꽃이 될 뿐이다’<벽>라는 인식의 전환은 세월 속에서 얻는 지혜의 한 자락이다. 젊은 시절 앞에 놓여 있던 벽을 얼마나 무너트리려고 했던가. 하지만 이제 그들이 벽이 되어 있는 현실을 마주한다.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들은 사랑과 연민과 기다림 과 반성 등이다. 읽으면서 순간 뜨끔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표제시인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서 그늘 없는 사람과 눈물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읽으면서 많이 공감했던 시다. ‘모든 인간에서 시를 본다’는 시인의 말은 남다른 관찰력을 엿보게 한다. 이 글을 쓰면서 대충 펼쳐 다시 읽으니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시들이 있다. 다음에 무작위로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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