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면 그만,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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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의 글을 참 오랜만에 읽었다. 가끔 그의 글을 마주하는 것은 대부분 인터넷 신문을 통해서다. 이때도 만나는 글들은 그의 SNS에 올라온 것을 옮겨 적은 것이다. 그의 활발한 사회 참여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그의 글을 읽게 된다. 하지만 그의 소설을 더 좋아한다. 한때는 짧은 시간 동안 도서관에서 그의 소설만 빌려서 읽은 적도 있다. 그 후 몇 년에 한 번씩 나오는 장편에 큰 갈증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나에게 소설 대신, 아니 더 자주 출간되는 이런 우화집은 사실 아쉬움 덩어리다. 소설을 한 편 더 써주면 좋을 텐데 하는 마음 때문이다.

 

예전에는 사실 이런 종류의 글에 관심도 두지 않았다. 너무 말랑말랑하고, 좀더 치열하게 살아야한다는 생각에 괜히 멀리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조금씩 나이가 먹고, 세상을 조금더 알면서 이런 글들이 가슴 한 곳에 조용히 자리잡기 시작했다. 아마 이렇게 읽게 된 것이 고등학교 국어선생의 말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젊을 때는 시와 소설과 인문학 서적을, 나이가 든 후는 에세이 종류를 읽어야 한다는 그 말. 이 말이 금과옥조가 되어 책읽기에 빠진 나에게 유연성을 빼앗아갔다. 뭐 그 덕분에 다른 것을 배운 것도 많지만.

 

크게 다섯 장으로 나눠 놓았지만 읽다 보면 살짝 비슷한 내용도 나온다. 정확하게 어떤 곳이냐고 묻는다면 당장 찾을 수 없다. 거의 300쪽 분량 속에 수많은 제목과 이야기를 간략하고 함축적으로 풀어내어 하나하나 대조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 이 부분은 패스. 하지만 이 감성우화는 머리와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해학과 유머로 가득하다. 그냥 읽으면서 휙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조근조근 그 문장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읽어야한다. 그래야 이 책의 재미를 제대로 누릴 수 있다. 책 속에 밑줄치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상당히 많은 잉크가 사라져야 할 것이다. 나의 경우는 스마트폰 사진으로 겨우 몇 장만 찍어놓았다. 겨우 몇 장인 것은 귀차니즘 탓이다.

 

풍자와 해학, 유머와 날 섰지만 은근한 비평 등은 나의 지식 한계 안에서 밖에 해석할 수 없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그 말이 이 책 속에 그래도 적용된다. SNS로 정치, 사회, 문화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그의 이력이 이 길지 않은 글들 속에 잔잔하게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지 않은 굴곡진 인생을 산 작가의 경험이나 통찰이 표현될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어떤 곳에서는 웃음이 절로 터진다. 간결한 문장으로 삶의 경험들이 함축적으로 표현될 때 인상을 찌푸리고 집중한다. 그 의미를 좀더 깊이 되새겨보고 싶기 때문이다.

 

“뱀이 나타나 선악과를 따 먹으라고 유혹했을 때 한국 사람이었다면 하나님이 따 먹지 말라고 하셨던 선악과 대신 정력에 좋다는 뱀을 먼저 잡아먹지 않았을까.” 했을 때 웃음과 함께 우리 문화의 씁쓸함이 동시에 다가왔다. “24시간마다 한 번씩 묵은 날이 가고 새날이 온다. 하지만 자신이 새롭지 않으면 어떤 날이 와도 결코 새날이 아니다. 날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태어나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을 때 삶에 대한 통찰을 보았다.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젊었을 때 개고생을 많이 해서 비만 오면 뼈마디가 쑤신다. 자연과 한 몸이 되었다는 뜻일까.”라고 했을 때는 도가의 천인합일이 이렇게도 표현될 수 있구나 생각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재밌는 풍자와 해학이 아닌가.

 

전체적으로 단숨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이지만 며칠 동안 조금씩 읽었다. 좀더 곱씹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라고 했을 때 아직 그 깊이를 이해하지 못해 아쉬웠고, 세월호 사건이나 표절, 자살, 정치 등의 문제로 옮겨갔을 때는 가슴 한 곳에 분노의 파편들이 들끓어 올랐다. 아직 수양이 부족한 탓이다. 쌓이는 시간을 받아들이지 못한 탓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책에 실린 정태련 화가의 그림은 낯선 놀람을 전해준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모두 다른 물고기들이 세상을 헤엄치고 있었다. 그 세밀함과 자유로움은 글과 글 사이의 쉼터가 되었다. 어떨 때는 조용히 그림만 본다. 이 책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하나 있다. 존버다. 지금 병상에서 암과 싸우고 있는 작가가 존버정신으로 일어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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