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의 계절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바버라 킹솔버 지음, 이재경 옮김 / 비채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700쪽이 넘는 대작이다. 단숨에 읽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추석 연휴에 버스에서 읽으려고 마음먹으면서 시간이 길어졌다. 움직이는 차와 불편한 자리가 몰입을 방해했다. 평소처럼 좀더 가벼운 책을 차안에서 읽었어야 했다. 요즘처럼 집중도가 떨어지는 시기에는 더욱. 집에 다시 돌아온 후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더 재미있어졌다. 가야할 곳과 만나야 할 사람이 많은 명절은 책에 집중할 시간을 좀처럼 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선택한 것은 나에게 ‘천지개벽’이었다.

 

가장 먼저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작가의 서두 문장이다. “돌돌 말린 레드카펫이 펼쳐지듯 소설의 서사가 일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때가 있다. 그렇게 순식간에 전체가 보이는 순간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소설이란, 눈에 보이는 것을 이해하고 처리하는 작업이자, 먼저 믿을 것을 정하고 증거를 수집해가는 과정이다.” 이 한 마디는 실제 이 소설의 구성을 가장 잘 나타내준다. 세 명의 주인공을 등장시켜 각자의 이야기를 펼쳐내다가 이들의 관계를 한순간에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기위해 작가는 각 주인공의 세계를 세밀하고 솔직하고 은밀하게 그려낸다. 이 과정 속에서 나온 자연의 생태계는 우리가 잊고 있던 자연 그대로 모습을 보여준다.

 

세 주인공의 이름이 아닌 관심사를 각 장의 이름으로 내세운다. 포식자들, 나방의 사랑, 옛날 밤나무. 포식자의 주인공은 산림감시원인 디아나고, 나방의 사랑은 곤충학자 루사, 옛날 밤나무는 전직 교사이자 밤나무 품종을 개량하려는 가넷이다. 이들은 각각 다른 나이 대이고 입장도 서로 다르다. 가장 젊은 쪽은 루사고, 다름은 디아나, 가넷이 가장 많다. 가넷과 함께 등장하는 옆집 노파 내니도 칠십 대다. 이 다른 연령대는 다른 위치와 입장에서 삶을 바라보게 하는 동시에 가장 본능적인 감정이 연령과는 상관없다는 사실을 표현하는데 아주 잘 맞아떨어진다. 이것은 자연의 생태계를 섹스의 세계로 표현한 것과 은밀하게 연결된다.

 

먹이사슬의 가장 상층부를 차지하는 포식자. 여기서 중심이 되는 동물은 코요테다. 디아나는 코요테를 쫓고 관찰한다. 그녀는 결코 자연의 파괴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 포식자를 죽이면서 벌어질 수 있는 생태계의 파괴를 두려워한다. 그녀를 조용히 뒤따르다가 그녀와 함께 자게 된 연하의 사냥꾼 에디 본도는 코요테를 잡으려고 한다. 마흔일곱에 폐경기를 앞둔 그녀가 야생의 세계에서 연하에 키도 그녀보다 작은 남자와 함께 하면서 가장 본능적인 감각을 일깨운다. 그녀의 행동과 관찰은 인간의 본능과 자연의 본능이 동일하다는 것을 알리고, 작가가 수집한 증거를 하나씩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과정이다.

 

루사는 남편 콜을 따라오면서 학자의 삶을 포기했다. 그런데 콜이 차 사고로 죽었다. 시골 대가족의 유일한 아들이었던 그의 죽음은 한 번도 시골 대가족과 함께 생활한 적이 없는 그녀를 공황으로 몰아간다. 이전에도 많은 시누이들과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와이드너 농장을 꾸려나가야 하는데 그녀는 농사에 대한 경험도 없다. 젊은 그녀가 떠날지 모른다는 소문이 돌고, 시누이들 가족은 불안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하지만 가장 힘든 것은 루사다. 이런 그녀가 과부가 된 슬픔과 번식의 본능 속에서 앓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한 편의 성장 소설처럼 보인다. 그리고 다양한 문화를 경험한 것이 그녀의 삶에 하나의 빛을 던져준다. 비록 한 해 동안만 유효하다고 해도.

 

옛날 밤나무 속 가넷은 기독교 근본주의자다. 백내장을 앓고 있고, 몸도 불편하다. 루사가 염소를 키우는데 많은 도움을 주지만 농사에서는 기존의 화학농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에 대척점에 선 인물이 바로 옆집 노파 내니다. 그녀는 자연농법으로 친환경농산물을 키우고 있다. 가넷이 제초제를 사용하려고 한 일로 투닥거리면서 대화가 시작되는데 서로 다른 입장 차이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자연에 대한 신의 관점부터 생활까지. 하지만 본능은 가넷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상대적으로 가장 적은 분량이지만 현재 미국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지 않나 생각한다.

 

이 세 명이 중심으로 등장하지만 이들과 관계된 사람들이 나오면서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진다. 에디는 자연림 속 자연생태계에 대한 설명을 듣는 역할을 맡고, 크리스는 나방을 비롯한 곤충세계를 들여다보게 한다. 내니와 가넷은 한쌍으로 등장해서 현재는 사라졌다고 생각한 것들을 되살려내면서 서서히 유대감을 쌓아간다. 작가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면서 이 과정을 묵직하게 풀어낸다. 인간이 가진 야생성과 생식의 본능을 자연의 거대한 섭리 속에 녹여내었다. 도식적으로 흐를 수 있는 생태문학을 인간의 삶과 관계를 직시하고 통찰하면서 멋지게 엮었다. 가장 인상적인 마지막 문장인 “모든 선택이 선택당한 쪽에게는 천지개벽이다.”(713쪽)란 글로 인드라의 그물을 연상시키는 이 소설을 맺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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