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도둑
엘리자베스 코스토바 지음, 유소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작 <히스토리언>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이번 작품도 기대했다. 그런데 이 기대가 책을 펼쳐 읽은 후 얼마 되지 않아 깨졌다. 거의 670 여쪽에 달하는 이 책이 예상한 속도감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술 미스터리를 앞에 내세웠지만 너무 느슨하게 구성하고 전개한 내용 때문에 미스터리 특유의 긴장감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문장도 섬세하여 조금은 곱씹으면서 읽어야 했다. 당연히 진도는 더뎠고 몰입도는 예상보다 떨어졌다. 하지만 풍부한 자료 조사와 섬세한 묘사는 잠시 여유를 가지고 읽는다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려준다. 이런 여유를 즐기는 독자라면 훨씬 좋은 평이 나올 것이다.

 

구성은 사실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몇 명의 인물을 화자로 내세워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다. 이 사이사이에 과거의 편지와 이야기를 넣어서 이 예술 미스터리에 대한 답을 조금씩 흘린다. 105개의 장과 몇 개의 연도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각각의 장들도 그렇게 길지 않다. 말로우를 비롯한 몇 명이 화자가 되지만 교차하면서 풀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길게 자신과 올리버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방식이다. 그 순서는 말로우에서 시작하여 올리버의 아내 케이트를 거쳐 연인이었던 메리로 이어진다. 이 구성의 재미난 점은 말로우와 만난 케이트가 이야기를 끝낸 시점에서 다시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메리도 마찬가지다. 그녀들은 단지 그들이 어떻게 올리버를 만났고, 같이 살았고, 헤어지게 되었는지를 알려줄 뿐이다. 물론 이 속에는 올리버를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단서가 들어있다.

 

정신과 의사 말로우는 아마추어 화가다. 그에게 내셔널 갤러리의 그림 <레다>를 공격한 한 화가, 올리버를 치료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온다. 소설의 시작은 바로 여기부터다. 왜 화가는 <레다>를 공격하려고 했을까? 이 속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예술 미스터리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하지만 작가는 간결하면서 빠르게 펼치지 않고 올리버의 아내와 연인의 입을 통해 천천히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은 한 여자인데 이 여자의 정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환상과 질투와 오해와 사랑과 집착 등을 각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를 들을 때면 고개를 갸웃하지만 모두 듣고 난 후는 이 둘 사이에 오해와 착각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소설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전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인물은 말로우다. 케이트와 메리가 화자로 등장하는 분량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이 둘은 말로우로 하여금 올리버를 이해하고 그가 그린 여인의 정체를 파악하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물론 독자는 올리버가 가지고 있던 편지의 번역본을 통해 이 여자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가장 의문인 것은 왜? 어떻게? 올리버가 이 여자에게 사로잡혔는지 전혀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감정의 문제는 이성으로 해석되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어느 시점에 그가 이 여인에게 빠졌고, 이 여인이 그에게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을 독자의 상상에 맡길 수도 있지만.

 

예술 미스터리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것은 거의 끝부분이다. 올리버가 공격한 질베르 토마의 <레다>에 대한 의문이 풀리고, 이 가상의 화가와 작품에 대해 작가가 들인 공이 빛을 발하는 순간도 바로 이때다. 하지만 이 부분을 위해 앞에 깔아놓은 수많은 이야기와 풍부한 설명과 방대한 자료 조사는 이 순간과 그렇게 강한 연관성을 보여주지도 긴장감을 고조시키지도 못한다. 문학성에 점수를 더 줄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오락적인 재미는 조금 떨어진다. 그리고 후반부에 그림 속 여인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 말로우 등이 떠나 발견하게 되는 사실이 어떤 진실을 향한 질주가 아닌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다가왔다. 오히려 중간중간 나오는 인물들의 관계와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심리 묘사가 훨씬 탁월하다.

 

<히스토리언>을 생각하면서 판타지 성격이 가졌거나 속도감 있는 전개나 강한 긴장감을 기대했다면 솔직히 별도다. 하지만 섬세한 문장과 풍부한 자료 조사와 생동감 있는 심리 묘사를 좋아한다면 추천하고 싶다. 19세기 인상파와 인상파 화가에 대한 정보나 현실 속 화가의 삶에 대해 궁금하다면 좋은 정보를 제공해준다.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그들의 피나는 연습과 빛에 따라 변하는 풍경을 잡기 위한 노력은 강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은 역시 올리버의 말없음이다. 이것을 깨기 위한 한 정신과 의사의 긴 여정은 어떻게 보면 집착이요, 달리 보면 강한 책임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