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날의 오후 다섯 시
김용택 지음 / 예담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생각보다 얇고 작은 책을 보고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전에 작가의 다른 에세이를 한달음에 읽은 적이 있기에 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첫 문장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냥 휙 하니 읽을 책이 아니다. 문장에 호흡을 붙이고, 곱씹으면서 읽어야 그 깊이를 살짝이나마 알 수 있다. 일상의 심심함을 무난하게 풀어낸 듯한데 그의 철학이 깊이를 가지고 다가온다. 일상이 예술이고, 당신이 예술이고, 내가 바로 시라고 할 때 피상적 감상을 넘어 가슴 한 편으로 뭔가가 날아 들어왔다.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바람의 자유’다. 바람과 자유는 나의 청춘을 뒤흔든 단어이자 개념이다. 여기서 풀어내는 일상과 예술과 자유에 대한 작가의 철학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예술의 진실은 무너지지 않는 거대한 힘이다. 그 힘을 얻고 믿을 때까지 가본 사람은 안다. 예술은 처음도 끝도 자유라는 것을.”(38쪽) 자유롭지 못한 예술은 결국 선전의 도구로 전락한다. 그가 분단의 현실을 강하게 한탄하고 부르짖는 것도 이것의 연장선이다.

 

자전거를 타본 지 오래되었다. 두 손을 놓고 바람을 맞으며 달린 것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시인이 열손가락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을 노래할 때 내 몸 한 곳에 바람이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어릴 때 기억이 몸 곳곳에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교육에 대해, 글쓰기에 대해 말할 때 참 멋지고 좋은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나무를 하나 정하고 나무에서 일어나는 일을 적게 한 것은 탁월한 교육 방법이다. 한 아이가 나무에 대해 말할 때 그가 감탄해서 말한다. “오! 그래, 그럼 지금 네가 한 말을 글로 써봐라. 그게 글이 된다.”(80쪽) 물론 이것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계속해서 하다보면 아주 좋은 글쓰기 연습이 될 것이다.

 

2부는 ‘아름답게 가난하게’다. 1부에서 글과 시를 속으로만 읽었다면 2부의 시를 만나면 작게 소리내어 읽어본다. 눈으로 읽을 때와 다른 느낌이 들고 더 많은 감상이 가슴으로 와 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만난 사람들의 추억과 기억들이 많이 나온다. 그 관계와 인연은 어느 순간에는 웃음을 자아내고, 어떤 때는 나의 기억을 떠올려주고 추억 속에 잠시 잠기게 만든다. 어느 해 징검다리를 건너며 징검다리의 밤 물소리를 녹음하면서 듣게 된 자신의 발소리는 순간 멍하게 만들었다. 사물과의 관계에서 우린 자주 자신을 빼놓고 관찰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내 안의 소리,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 순간적으로 찾아왔다.

 

심심한 날의 오후 다섯 시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책 읽다가 잠시 졸고 일어나 움츠려 있던 몸에 기지개를 펼 것이다. 약간 멍한 머리로 주변을 둘러보고 떨어져 가는 햇살 속에서 그때까지 흘러간 하루를 아쉬워 할 것이다. 만약 내가 늦게 일어나고, 다른 특별한 일을 한 것이 없다면 더욱. 아니면 작가처럼 시인의 시 한 편을 읽으면서 눈물 한 방울을 뚝 떨어트릴지 모른다. 가끔 이 시간은 그런 감상에 빠지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이 감상을 글로 표현한다면 멋진 시가 되지 않을까? 삶이 시니 심심한 날도 시로 나타날 것이다. 이런 다양한 일상들이 이 작은 책 속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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