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걸으며 제자백가를 만나다
채한수 지음 / 김영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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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백가와 춘추전국시대에 대한 호기심은 이전부터 있었다. 지금까지 읽은 수많은 책 속에서 제자백가 이야기를 만났다. 하지만 제대로 제자백가의 저서를 읽은 적은 없다. 가장 많이 읽은 것으로 꼽는다면 <장자>가 될 것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장자에 매혹되어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놓았다. 원문을 번역하고 주석을 붙이거나 아니면 장자의 전체 흐름을 새롭게 풀어내었다. 읽을 때마다 감탄하고 알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냥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수박 겉핥기식 독서의 결과다. 이것은 <논어>도 마찬가지다. 사놓은 해석 책이 몇 권 되지만 한 번도 읽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른 책은 어떻겠는가.

 

제자백가를 제목에 넣었지만 여기서 다루는 책은 모두 열 권이다. 장자, 열자, 한비자, 전국책, 여씨춘추, 논어, 묵자, 맹자, 회남자, 안자춘추 등이다. 분량으로 따지면 <장자>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이 <한비자>다. <열자>까지는 어느 정도 분량이 되지만 나머지는 다루고 있는 내용이 그렇게 많지 않다. 개인적으로 <묵자>와 <회남자> 내용이 많이 궁금했는데 너무 적은 분량이라 아쉬웠다. 현재 남아 있는 내용도 실제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을 알지만 특별히 찾아서 읽지 않으면 쉽게 접할 수 있는 책들이 아니라 더 그런지 모르겠다.

 

책의 구성은 간단하다. 먼저 앞에 말한 열 권의 고전을 선택한다. 각 고전 속에서 이야기를 뽑아 저자가 편집한 내용을 나열한다. 그리고 이 내용에 대한 각각의 해설을 단다. 이 작업의 연속인데 저자의 의도에 따라 편집된 부분이 많다. 원문을 그대로 해석하지 않고 이야기 식으로 풀어내었다. 그래서 처음 접하는 사람이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들었다. 해석에서 본문에 생략된 부분을 말해주는데 어떤 부분은 과도한 편집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이해되지 않던 부분을 잘 알려줘서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준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 중 90% 이상은 한두 번 본 것들이다. 원전의 해설서를 읽으면서 혹은 다른 책들 속에 인용된 것에서나 고사성어에 대한 해설 등에서. 하지만 몇 가지 이야기를 제외하면 전혀 원전을 몰랐다. 한 번도 <열자>나 <전국책>이나 <회남자> 등에 실린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만으로 친다면 출처를 알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출처가 중요하다. 그것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맹자>의 ‘닭 도둑의 변명’이야기는 현재에 그대로 적용된다. 이전 정권의 부자 감세 정책은 신속하고 대대적으로 벌어졌지만 현 정권의 부자 증세 정책은 아주 더디다. 대신 사람들의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 간접세의 증세는 신속하다. 가진 자들을 위한 변명은 언론을 통해, 정부 관료의 입을 통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온다. 경제 위기, 혼란, 성장 우선 등의 변명들 말이다. 하지만 이 변명의 이면에는 현재를 고착화시켜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저자가 해석에서 정치인들을 질타한 것도 이런 현실에 대한 반작용이다.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불만인 것이 몇 개 있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춘추전국시대 각 나라의 수도로 서울이라고 호칭한 것이다. 서울과 수도를 같은 것으로 놓고 무심코 사용한 것인지 아니면 서울이 곧 수도라는 철학을 가지고 쓴 것인지 궁금하다. 무심코 사용한 것이면 수정해야 할 것이고, 자신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면 헌재의 관습헌법처럼, 혹은 <한비자>의 ‘입던 바지가 편하다’이야기의 해설처럼 의식 개혁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오랑캐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사용하고 있는데 조금 더 연구한다면 그 시대 북방민족의 이름을 제대로 적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제목처럼 천천히 제자백가를 만났다. 특별히 신선한 것은 없지만 잘 정리된 이야기는 이전 기억들을 환기시키고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각 유파의 입장을 알 수 있어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것은 현재도 마찬가지다.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더 느낀 것은 유학자들이 권력을 쥐게 된 데는 권력자들의 입맛에 가장 맞는 통치철학이었기 때문이란 것이다. 현재 묵자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놀랐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더 공감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제자백가에 대한 입문서로 권하고 싶다. 단지 입문서로만. 지금 괜히 예전에 읽은 장자에 대한 책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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