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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스완그린
데이비드 미첼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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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호밀밭의 파수꾼>은 두 번을 읽었지만 아직도 그 재미를 모른다. 이 때문인지 이 소설도 재미있는 이야기와 무슨 말인지 모르는 이야기로 구분된다. 나의 경험이, 삶의 방식이 작가가 경험한 혹은 살아온 것과 다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아니면 그가 글로 표현한 것이 충분히 나의 감성을 적시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을 되돌아보고, 비교하고, 공감하는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두 번 이상 겪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열세 살 소년 제이슨이 주인공이다.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대입하면 중학생인 그는 말을 더듬는다. 그는 이것을 행맨이라고 부른다. 행맨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단어를 더듬게 하거나 다른 단어를 사용하게 만든다. 언어 교정을 위해 의사를 찾아가지만 이것이 쉽게 고쳐질 리가 없다. 행맨은 이후 그의 삶과 함께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가 시인이라는 사실이다. 교구 잡지에 엘리엇 볼리바란 필명으로 시를 쓴다. 이 시는 또 다른 인연으로 이어진다. 에바 크롬린크 부인이다. 그녀를 통해 시 교육을 받고, 자신의 정체성과 용기를 배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인연은 그렇게 길지 않다.

 

대처 시대 영국이 배경이다. 아르헨티나와 포클랜드 전쟁이 있던 시기다. 언제나 그렇지만 전쟁은 국민들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애국심은 고취되고 권력은 하나로 집중된다. 훗날 대처리즘이라고 불리는 정책이 시행되던 시기다. 하지만 아직 제이슨이 이 정책을 피부로 느끼기엔 어리다. 집의 경제도 그렇게 나쁜 편이 아니다. 주변에서 실업자가 한 명씩 늘어나고 있지만 다른 집의 문제일 뿐이다. 그에게 닥친 문제는 또래들과의 관계다. 학교 서열에서 중간 위치를 차지해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진 학생들이 겪은 고통을 피하는 것이다. 이 목표는 엄마와 함께 영화관에 간 것을 들키면서 틀어진다.

 

십대 남자들. 이들은 과장된 남성성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표출하려고 한다. 제이슨이 필명으로 시를 보내는 것도 계집애 같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다. 엄마와 함께 영화를 보러가는 것도 이런 일 중 하나다. 남자답지 못하다는 말은 남자로 자라고 살아가는 동안 평생 듣고 살게 된다. 이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변함이 없다. 반대편에는 여자답지 못하다는 말이 있겠지만. 이 남자다움을 증명하는 것은 그 시절 아이들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처럼 말을 더듬고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에게는 아주 어려운 일이다.

 

13개월 동안 13개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시간이 제이슨으로 하여금 성장의 고통을 겪게 만든다. 할아버지 유품인 시계를 스케이트 타다가 부수고, 직장을 잃지 않기 위해 사장에게 굽실거리면서 아부하는 아버지를 보게 한다. 시계가 부서졌다는 말을 할 용기가 없는 그와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 못하는 아버지가 겹쳐진다. 제이슨에게는 아버지의 화난 모습이, 아버지에겐 실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 엄마와 함께 영화 본 것을 들킨 후 버러지라고 학교짱 패거리의 놀림을 받는다. 중간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이것을 정면으로 돌파할 용기가 부족하다. 그 용기는 어느 순간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와서 행동으로 표현된다.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뭐지 한 부분이 있다. 제이슨이 시계를 깨트리고 발목을 다친 후 찾아간 어떤 노파 집에서 벌어진 마지막 장면이다. 이 소설의 첫 장인데 여기서 혹시 다른 판타지 세계로 빠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길 정도였다. 이 의심은 마지막에 해결되는데 솔직히 조금 아쉬웠다. 뭔가 다른 이야기를 더 많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현실로 이어지는 다음 이야기가 행맨에 대한 것이라서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소설 곳곳에 80년대 영국 가정의 풍경이 녹아있다. 허세와 과장된 표현이 가득하고, 유행과 과시도 그대로다. 진실을 마주하기보다 자신들이 보기에 편한 것만 보고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것이 쉽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정체도 아닌 퇴보로 이어진다. 제이슨이 성장한 만큼, 혹은 그 이상 어른들은 퇴보하고 있다. 조그만 세상에서 자신만 보던 제이슨에게 점점 넓어진 세계의 모습은 너무 낯설다. 이 낯선 풍경을 하나씩 자기 안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는 겪고 있다. 그 속에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들어있다. 마지막에 울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그를 보면서 안타까움과 연민이 몰려온다. 동시에 그의 첫 키스 장면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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