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최진영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왜 사는가?’ 이 질문 대신 ‘왜 죽지 않았는가’에 대한 답을 구하는 소설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도달하면 ‘그것을 묻는 당신은 누구인가’하고 되묻는다. 이 물음들이 기억의 늪을 뚫고 하나씩 의식 밖으로 튀어나온다. 그런데 이 기억들이 명확한 실체를 가진 것이 없다. 가장 확실한 것 같은 죽은 아버지의 기억도 뒤로 가면 흔들린다. 자신의 기억이 자신만의 감성으로 덧칠되어 질 때 그 기억을 공유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그것과 차이가 생긴다. 이 차이를 확인해가는 과정을 차분하게 다룬다. 결코 그 과정이 쉽게 풀리지는 않는다.

 

원도. 왜 죽지 않았는가하고 질문을 던진 남자다. 답을 찾기 위해 자신의 기억을 뒤집어 재생한다. 어디에서 잘못이 생겼는지 찾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다.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물을 먹고 죽은 아버지다. 그가 남긴 다섯 글자 ‘만족스럽다’는 그의 삶에 평생 지울 수 없는 의문을 던진다. 죽은 아버지가 있다면 산 아버지도 있다. 그는 경찰이다. 그는 선택과 자유를 강요한다. 얼핏 보기에는 맞는 것 같은데 그가 휘두르는 배트는 실제 속내를 그대로 보여준다. 논리와 폭력이 공존한다. 아버지의 권위가 그를 짓누른다.

 

현재의 그를 보면 왜 죽지 않았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의 과거가 아주 특별할 것 같다. 하지만 그의 학창시절을 들여다보면 일반 학생과 별 차이가 없다. 그가 들려주는 학창시절의 풍경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장민석이다. 엄마가 돌보는 아이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엄마의 말을 실천한다. 그것은 웃음이다. 그의 등장은 원도를 뒤흔든다. 우연히 같은 반찬을 가져온 날 이에 대한 둘의 반응은 다르다. 나중에 장민석이 그의 집으로 들어왔을 때 이 둘이 경쟁과 다툼은 서로를 괴물로 만든다. 자신이 가진 것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고 생각한 원도에게 이 일은 평생 지울 수 없는 기억이 된다.

 

대학생 때 그에게 유경이란 여자 친구가 있었다. 그녀가 추억 속 한 자리를 차지하지만 진짜 영향을 미친 것은 이름이 나오지 않는 ‘그녀’다. 누군지 알 수 없는 그녀의 등장은 많지 않지만 그의 삶을 뒤흔들기 충분하다. 남자가 장민석이라면 여자는 그녀다. 그녀와의 미래를 설계하고 말로 내뱉는 순간 역설적으로 미래는 사라진다. 추억과 기억 속으로 빠져들수록 그녀의 영향은 점점 강해진다. 환상처럼 살아난다. 하지만 결국 왜 죽지 않았는가 하고 묻고 또 물을 때 이 과거는 빠르게 지워진다.

 

그는 결코 평범하고 착한 삶을 살지 않았다. 횡령과 사기로 쌓은 부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무의식적 행동은 살인으로 이어진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일상에서 그가 여관으로 들어간다. 그의 모습에 불안감을 느낀 여관 주인의 반응이 오히려 고맙다. 죽으려는 의지가 없는 그가 혹시 자살할까 두려워하는 여관 주인의 모습은 생의 의지로 가득하다. 만약 그가 여관 안에서 자살이라도 하면 여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삶의 의지는 이렇게 미래를 걱정하고 현실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려고 할 때 강해진다.

 

원도는 엄마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아이였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없는 어른이었다. 이런 원도를 과거의 기억 속에서 하나씩 끄집어낸다. 산 아버지와 죽은 아버지의 기억도 처음과 달라진다. 하나씩 나오는 사실들은 삶의 기억을 더욱 뒤섞어버린다. 읽으면서 혼란을 겪는다. 분명히 잘 읽히는데 그의 의식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 문장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의식의 흐름에 제대로 올라타지 못한 탓이다. 이미 망가진 몸을 지닌 그에게서 삶의 의지 한 자락을 발견했다고 하면 나만의 착각일까? 마지막에 그가 혼자라고 대답하는 순간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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