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망아지.불만의 겨울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존 스타인벡 지음, 이진.이성은 옮김, 김욱동 해설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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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타인벡하면 내용도 잘 모르면서 신나게 읽은 <분노의 포도>와 <에덴의 동쪽>가 먼저 떠오른다. 이 두 작품이 그의 대표적인 대작인데 굉장히 몰입해서 읽은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 이 작품들에 대한 기억은 거의 사라지고 없다. 그 후 몇 작품을 더 읽었는데 소설에 대한 전반적인 취향이 바뀐 후에도 여전히 몰입이 잘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도 쉽게 생각했다. 하루 이틀이면 가능할 것으로. 약속과 산만해진 마음으로 생각보다 빠르게 읽지는 못했다. 하지만 역시 나의 입맛에는 잘 맞았고, 성장소설인 <붉은 망아지>보다 <불만의 겨울>이 더 흥미로웠다.

 

<붉은 망아지>를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니 예전에 출간되었다가 절판인 상태다. 이번에 그의 마지막 소설과 함께 묶어져 출간되었는데 독자의 한 사람으로써 반가운 일이다. 한 권으로 두 편의 소설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불만의 겨울>도 역시 출간되어 있다. 하지만 단 한 편의 서평을 보니 번역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 이 책은 아직 절판은 아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좋은 소설이 절판되지 않고 새롭게 번역되어 나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누구나 하는 말처럼 번역하는 시대의 문장과 생각이 번역 속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중편 분량인 <붉은 망아지>는 목장 일꾼 빌리 벅에서 주인공인 조디에게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첫 장면의 인상이 소년의 등장으로 바뀐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조디가 주인공일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망아지 이야기가 나오면서 중심이 옮겨간다. 조디의 심리가 더 세밀하게 묘사된다. 이 심리 묘사는 조디의 감정을 통해 잘 드러나는데 기대와 흥분과 두려움과 불안 과 슬픔과 그리움 등이 섞여서 나타난다. 모두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이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론 조금씩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또 각 장의 이야기는 성장의 관문 역할을 한다. 개인적으로 파이사노 영감 지타노가 갑작스럽게 사라진 것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왜 그랬을까?

 

<불만의 겨울>은 몰락한 가문의 후손 이선의 심리를 아주 역동적이면서도 세밀하게 다룬다. 동시에 이선이 살고 있는 읍의 문제점을 바탕에 깔고 있다. 처음 이선과 아내 메리의 대화가 나왔을 때만 해도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이선의 농담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근길에 만난 은행원과의 대화나 그의 행동도 역시 산만한 느낌을 주었다. 그가 만난 사람이나 그를 유혹하기 위해 온 판매원을 대하는 행동 등을 볼 때 너무 정직했다. 약간 따분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더 나가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선의 내면이 드러났다. 이때도 역시 설마하고 생각했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실천으로 옮겨질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몰락한 가문의 후예. 재산도 없고 미래도 불안하다. 은행장은 아내의 유산을 예금으로 묶어두지 말고 투자하라고 유혹한다. 그의 아버지가 투자로 그 많던 재산을 날려버린 것을 생각하면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고민은 깊어진다. 가문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의지는 있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 불가능하다. 냉소적인 지식인인 이선은 비열한 방법을 계획한다. 이탈리아인 가게 주인 마룰로의 불법체류를 신고하고, 어린 시절 친했던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땅을 빼앗는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은행마저 털려고 한다. 한 번 뒤틀린 감정과 욕망은 다른 사람에게 정직하다는 인상을 남겨준 그의 도덕과 윤리를 심하게 뒤흔든다.

 

이선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옮기려고 하거나 한 것을 읽을 때 한 편의 멋진 심리 스릴러를 읽는 듯했다. 욕망과 도덕심이 충돌하고, 아이들은 물질적 욕망을 순수하게 그대로 드러낸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욕망이 바탕에 흐르면서 사회문제를 조용히 나타낸다. 관행이란 이름으로 행해졌던 일들이다. 이런 모든 문제들에서 가장 순수하고 정직하게만 보였던 그가 가장 추악한 욕망을 숨긴 채 살아간다는 것은 삶의 역설이기도 하다. 이것이 또 그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란 점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잘못과 부패 등이 이것을 변명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과 연결된다. 마지막에 진실과 도덕심이 욕망의 탑을 무너트리는 과정은 순식간이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희망의 끈은 존재한다.

 

“여자들이 정말 어렸을 때부터 세밀한 관찰을 통해 자신들이 직감이라고 부르는 것의 기초를 쌓는다는 것을 알았다.”(269쪽)고 했을 때 이 통찰이 단순히 여자들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작가가 이선을 통해 들어다보는 삶의 순간들이나 욕망 등도 바로 이런 세밀한 관찰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가 욕망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세운 세밀한 계획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읽는 내내 이선의 불안한 감정들이 가슴속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이 감정들이 나의 가슴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마음 한자락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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