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귀신의 노래 - 지상을 걷는 쓸쓸한 여행자들을 위한 따뜻한 손편지
곽재구 지음 / 열림원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애정을 가지고 말하는 마을에 빠져들게 된다. 이 책에서는 와온이다. 모두 네 꼭지로 구성된 책에서 두 번째 꼭지 제목이 ‘와온 가는 길’이다. 와온은 순천만에 자리잡은 조그만 해변 마을이다. 인터넷에 검색하니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올라와 있다. 늘 외국이나 한국의 유명 관광지만 눈여겨보던 나에게 아주 반가운 정보이자 강한 여운을 남기는 공간이 되었다. 아마도 가까운 시일 안에 갈 것은 아니지만 여수와 순천을 묶어 함께 움직일 때 기억날 것 같다. 책 속 작가나 다른 여행자들처럼 깊은 감명을 받는 것을 뒤로 하고.

 

한 마을을 제외하면 시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시다. 그의 시가 어떻게 쓰여졌는지 알려주는 사연을 듣다가 시를 읽으면 한결 쉽게 이해된다. 대표작인 <사평역에서>가 어떻게 쓴 시였고, 어떤 경로를 거쳐 신춘문예에 당첨되었는지 알려주는 이야기도 있다. 여기에 담긴 것은 그의 시에 대한 열정이자 사랑이고 운명이다. 치열했던 과거의 열정과 도전을 들려줄 때 나 자신의 과거를 자연스레 되돌아본다. 과연 그만한 열정과 도전이 있었는지 하고. 그리고 현재 나의 여행이 얼마나 편안함에 물들어 있는지도. 읽다보면 떠나고 돌아보고 장시간 한 곳에 머물며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진다. 그 어떤 여행 산문집에서 느낀 감정 이상의 것이 불끈 치솟아 오른다.

 

시인 곽재구가 만난 사람들 이야기다.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어떻게 보면 대단히 평범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 잔잔한 만남과 헤어짐 속에 깊은 성찰과 여운이 담겨 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자연과 사람으로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삶이 밖으로 조용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풍경을 볼 때 그의 시선은 과장된 표현보다 오히려 투박함이 더 느껴진다. 가끔 지명에 대한 오해도 하지만 그것도 새로운 곳에 도착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특히 여자도 이야기는 나도 살짝 기대했다. 뭔가 전설이 있지 않을까 하고. 이 책은 이런 실수도 재미있고 정답게 풀어낸다.

 

지금은 대부분 차로 목적지에 바로 직행한다. 운전하다보면 그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풍경을 놓친다. 늘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기차로 움직이면 밖을 볼까? 아니다. 역시 책이나 다른 것을 보면서 지나간다. 아마 밖을 가장 많이 볼 때는 운전수 옆에서 이야기하면서 갈 때가 아닐까 싶다. 이런 여행을 하는 나에게 그가 권하는 입석 여행은 거의 불가능하다. 시간과 속도에 이미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고 싶은 여행이다. 풍경을 보기 위해서가 아닌 자신만의 시간을 더 깊게 가지기 위해서다. 그가 열 편의 시를 썼다면 나에게는 한 권의 책 읽는 시간이나 목적지에서 돌아볼 여러 곳을 검색하기 위한 시간으로. 아주 오래전 입석으로 집에 가면서 한 권의 책을 읽었던 기억이 문득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가볍게 단숨에 읽어도 좋고, 한 편씩 음미하면서 읽어도 좋을 것이다. 흙냄새, 바람, 햇살. 이것은 언제부터 우리가 잊고 있던 것들이다. 봄바람이나 겨울 햇살은 가끔 느껴보지만 흙냄새는 정말 맡아보기 힘들어졌다. 도심에서 흙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화단도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진한 흙냄새를 맡으려면 외곽으로 나가야 한다. 시인의 기억 속에 남은 수많은 외국 마을들은 이런 것들이 아직도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도 불과 얼마 전까지 가까이에서 볼 수 있던 것들이었다. 이런 기억들은 그가 길을 떠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다. 길동무 대신 길귀신이란 이름을 붙인 이유도 뭐 특별한 것이 아니다. 시인의 관찰력으로 풀어낸 이야기가 정겹고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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