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자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다산책방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가의 2010년 작품이다. 실업자. 제목 그래도 주인공 알랭 들랑브르는 실업자다. 하지만 한국 기준으로 보면 그는 실업자가 아니다. 잔일거리를 하면서 쥐꼬리만 한 보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일은 새벽 5시에 근교 약국에 배달할 약품을 선별하는 작업이다. 하루 3시간 일하고 받는 월급은 585유로. 한 가족을 부양하기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돈이다. 이전에 간부급 회사원이었지만 이제는 4년간 실업자인 그의 현재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하면서 한 실업자의 치밀하고 처절한 생존 싸움이 시작된다.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전, 그때, 그 후다. 이 구성은 두 사람의 시점으로 풀어낸다. 그전과 그 후는 알랭 들랑브르의 시점이고, ‘그때’는 가상 인질극을 실행하던 폰타나의 시점이다. 처음 폰타나의 시점으로 옮겨갈 때 약간 혼선이 있었지만 상황과 설명이 이어지면서 ‘그때’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은 다음에 이어질 ‘그 후’를 아주 긴박하게 만드는 장치가 되면서 반전을 만드는 계기로 변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감정의 흐름이 롤러코스터를 타게 되는데 어떻게 보면 가장 냉정한 장이 바로 ‘그때’다. 아마 관찰자 시점이기 때문일 것이다.

 

4년 간 실직한 알랭에게 거대 기업 인력관리부서 채용 시험에 뽑히게 된 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다. 물론 그 이전에 의약품 배달회사에서 발생한 폭력 사건도 있다. 하지만 진짜 시작은 실업자 상태로 4년간 있었다는 것이다. 혹시 다시 정규직으로 채용될지 모른다는 사실이 그를 현실 밖으로 내몬다. 그 일이 지닌 위험성이나 그 뒤에 감쳐진 매니지먼트 회사의 속내는 둘째로 하고. 설상가상으로 이어지는 상황 속에 그의 열망은 어느 순간 광기로 변한다. 이 광기는 이 채용 방식이 가상 인질극이란 설정 때문이 아니다. 반드시 합격해야 한다는 절박감과 욕망이 가속화되고, 점점 더 늘어나는 실업자들의 숫자가 주는 미래의 불안정성 때문이다.

 

이 광기의 절정에 도달하는 것은 역시 채용회사의 정보를 얻고, 이 인질극에 참석할 고위간부들의 이력을 추론하고, 질문을 통해 그들을 극한 상황에 몰고 가 충성도 등을 실험하고, 이 평가를 통해 최종 합격자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면서부터다. 이 자신감은 자신의 경력과 탐정 사무실을 통한 고위간부들의 숨겨진 비밀을 수집하면서 더 높아진다. 하지만 바로 이때 문제가 생긴다. 바로 정보 수집 비용으로 2만5천 유로 이상 들어가는데 이 비용을 빌려주지 않는다고 사위를 때리고 딸을 속여 돈을 빌리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문제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들에게 거짓말하면서 자신이 만든 환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 채용회사의 무급 인턴에게 합격자가 내정되었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새로운 파국이 벌어진다.

 

‘그전’ 장을 읽으면 알랭이 느낀 불안감과 그가 집착에서 광기로 변하게 되는 과정을 보면서 느끼는 불안감이 겹친다. 알랭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현실과 함께 채용회사의 메일이 이 일의 이면을 하나씩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의 파국이 예견되는 현실에서 광기는 헛된 욕망으로 보이고 알랭 일가의 불안감은 더 높아진다. 한 실업자의 파멸이 어떻게 벌어지고 깊어지는지 아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최종 합격자가 이미 내정되어 있다는 정보는 충격과 분노를 만들어내고 다음 선택은 또 어떤 위험 속으로 그를 이끌고 들어갈지 궁금하게 만든다.

 

사실 이 소설에서 가장 오락적인 장면들은 ‘그 후’에 나온다. 이 장에서 수많은 계략이 오가고, 밀고 당기는 두 힘이 충돌하고, 극한 상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한 사선에 선 알랭의 모습과 이를 극복하고 반격을 펼치는 모습은 통쾌하다. 물론 다시 되돌아오는 반격은 더 강도가 강해진다. 이런 롤러코스터같은 상황들이 몇 번이나 이어지고 그 결말이 어떻게 될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책에서 손을 떼기 힘들어진다. ‘그때’장에서 깔아둔 복선과 설정이 하나씩 힘을 발휘한다. 과연 이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배짱과 폭력이 교차하고 정보가 구세주가 된다. 멋지고 재미있다.

 

이 재미를 만드는 과정 속에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은 계속 나온다. 대기업 회장의 퇴직금 금액이나 실업자들의 숫자와 미래에 대한 정보가 사이사이에 흘러나온다. 이 단편적인 정보는 알랭에게 더 공감하게 만들고 사회에 불만을 가지게 만든다. 알랭이 감금된 구치소에서 일반 범죄인과 VIP를 구분해서 수감하는 장면은 감옥마저도 계급사회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일하고 싶어도 감원이 더 많은 뉴스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고령의 실업자가 설 곳은 어디에도 없다. 나이가 들게 되면 점점 새로운 직장을 찾기 힘들어지는 혹은 거의 불가능한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월급 585유로의 조그만 일조차도 폭력에 굴복하지 않으면 힘든 현실이다. 재미있는 소설이지만 그 뒤에 남는 감정은 통쾌함보다 오히려 씁쓸함이 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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