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그림자의 춤
앨리스 먼로 지음, 곽명단 옮김 / 뿔(웅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201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앨리스 먼로의 첫 소설집이다. 모두 열다섯 편이 실려 있다. 이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사실 몇 편 없다. 하지만 각 단편에서 강한 인상을 주는 장면들이 있다. 한꺼번에 읽다 보니 제목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다시 목차를 보니 각 단편의 한두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이것이 단편의 매력일지 모른다. 평생 단편만을 쓴 작가의 이력을 생각할 때 이런 장면들에는 그녀의 통찰력이 담겨 있다. 쉽게 읽히지 않는 속에서 집중해서 들여다보면 평범한 사람들의 심리 묘사가 아주 뛰어나다. 대부분 그것을 제대로 느끼지 못해서 문제지.

 

열다섯 편. 이 중에서 당장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것은 몇몇 장면과 상황이다. <작업실>은 첫 작품이고 그녀의 선택 때문인지 아니면 집주인의 끔직한 집착 때문인지 모르지만 강한 인상을 주었다. 우리와 비슷한 집값 걱정으로 주변 사람을 쫓아내려는 사람들의 속내가 드러난 <휘황찬란한 집>, 이 단편집에서 유일하게 남자가 주인공인 <태워줘서 고마워>, 딸이 말을 달아나게 한 것을 두고 남녀 차별하는 말을 하는 <사내아이와 계집아이>, 최면술사의 호기에 빈정거림으로 맞섰다가 변을 당한 할머니를 보여주는 <어떤 바닷가 여행> 등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 작품들도 목차를 보면 그 미묘한 감정들이 흘러나오는 단편이 몇 편 있다. 아니 거의 모두 그렇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이 단편집에 강하게 몰입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장면과 상황이 더 머릿속에 남았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문장의 호흡이 나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중해서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내는데 힘겨움을 느꼈다. 호흡이 긴 문장과 자연스럽지 못한 번역은 집중력을 많이 흐트려놓는다. 아니 나의 집중력에 더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단편소설 특유의 함축적인 묘사와 장면 설정들과 낯선 지역과 문화 등을 풀어낸 것도 한몫했다.

 

이 소설 속 소재들은 모두 일상생활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것들이다. 어떤 것은 바로 당장 느끼고 만날 수 있지만 어떤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가족이 전혀 몰랐고 예상하지 못한 아버지의 모습을 그린 <떠돌뱅이 회사의 카우보이>가 대표적인 소설이다. 이런 허를 찌른 듯한 이야기가 흘러나올 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단편적인지 알게 된다. 또 애인이라고 생각하고 결혼까지 생각한 남자의 배신을 그린 <그림엽서>에서 자신도 잘 모르는 감정과 만난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들이 깨지는 순간을 이보다 더 잘 보여줄 것이 몇이나 될까.

 

위선적인 감정들이 흘러나오고 첫 바람대로 일이 진행될 때 중간에 바꾸려고 한 계획이 산산조각나면서 솔직한 행동으로 이어지고, 갑작스럽게 다가온 키스에 안도하는 것은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기대가 만들어낸 환상때문이다. 이런 감정들을 아주 조심스럽게 표현했는데 차분하게 읽지 않으면 그 감정을 놓치게 된다. 일상의 감정들은 수없이 변하고, 생각지도 못한 상황들이 벌어질 때 마음은 흔들린다. 오해는 자기 위주의 생각에서 대부분 비롯하고 일상의 의문은 속 시원하게 해결되지 못한다. 이것이 우리의 삶일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조금 힘들게 읽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오랫동안 뇌리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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