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닉 페어웰 지음, 김용재 옮김 / 비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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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열네 살 때 브라질로 이민 간 한국 이름 이규석의 소설이다. 이력을 보면 브라질 속으로 동화되기 위한 그의 노력이 돋보인다. 그의 아버지 말처럼 브라질 사람으로 살고 있는 그가 출세작인 <GO>을 가지고 한국으로 왔다. 사실 이 제목을 봤을 때 재일동포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GO>가 먼저 떠올랐다. 같은 제목이지만 다른 분위기다. 닉의 소설이 방황을 조금 무겁게 그려내었다면 가네시로는 좀더 가볍다. 닉의 소설에서 국적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가네시로의 소설에서는 재일동포가 분명히 드러난다. 서로 다른 두 나라가 가진 문화와 인식의 차이가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작가가 한국인이었기 때문인지 소설을 읽으면서 언제 주인공의 피부색이 나올까 궁금했다. 결론만 말하면 나오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발견하지 못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찾아보기 힘든 것 중 하나가 피부색과 인종에 대한 것이다. 영미권 소설을 볼 때면 인물 묘사에서 반드시 나오는 장면이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그것을 찾아볼 수 없다. 나의 착각일까? 바로 이 지점이 작가가 브라질에 동화되고 브라질인으로 살아가게 된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니면 브라질에서 이것이 전혀 중요하지 않거나 아니면 다른 목적에 의해 의도적으로 빠진 것일 수도 있다.

 

첫 부분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받은 인상은 짧은 문장들이다. 주어와 명사로만 구성된 듯한 문장은 빠르게 흘러간다. 흡사 헤밍웨이의 작품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중반 이후로 가면서 이런 짧은 문장은 줄어든다. 사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아쉽다. 충분히 이런 문장으로 이야기를 더 끌고 나갈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주인공의 직업이 DJ라서 그런지 아니면 브라질 분위기가 그런지 모르겠지만 영어가 아주 많이 흘러나온다. 음악에 대한 폭넓은 지식은 작중 직업 때문이 아니라 그의 내공을 알려주는 것 같다. 이것은 그가 고전 작품을 곳곳에 인용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주인공의 엄청난 독서량을 보면서 작가도 그런 것이 아닌가 살짝 의심이 생긴다.

 

20대 후반의 DJ가 주인공이다. 그의 삶은 불안하다. 그는 그 누구도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 첫 장면에서 돈 없고 배고파 찰리를 찾아가는데 누가 봐도 친구 사이다. 삶에 희망이 없는 그에게 친구는 환상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 또 그는 생각한다. “내 삶을 멈추게 하는 건 불안 그 자체가 아니라 지나친 자아비판이다.”(24쪽)라고. 글을 쓰는 자신을 불안과 절망 속에 빠트려 놓지 않으려는 의지로 보인다. 이 노력은 “그러니까 모든 상황이 최악일 때마다 딱 한 단어만 기억하는 거야. GO. 가, 앞으로 가. 그냥 해봐.”(128쪽)로 표출된다. 알고 있는 것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이 GO는 그가 더 깊은 절망의 나락에 빠진 후 다시 한 번 더 힘을 발휘한다.

 

주인공 ‘나’는 하나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아버지가 자신과 엄마를 버리고 갑자기 떠난 것이다. 이 공포가 그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강의하는 수업생 중 한 명에게 똑같이 이런 일이 벌어진다. 그 아이에게 조언을 하지만 정작 자신의 것은 해결하지 못한다. 그 아이 덕분에 전화번호부에서 아버지를 찾지만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그 만남이 이루어졌을 때도 어색하기만 하다. 아버지의 변명이 자신의 지나온 삶을 씻어주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나중에 아버지가 술 취해 그의 집으로 찾아왔을 때 한 말은 가장 진솔한 감정의 표현이자 조언이다. ‘너 자신의 삶을 살아라.’

 

소설 속에 그의 여자 친구가 세 명 등장한다. 전 여자 친구. 가장 완벽했던 진저. 진저를 잠시 잊게 만들었던 마조리. 진저를 잃게 된 것은 자신감 결핍 때문이다. 수컷의 욕망도 한 손 거들었지만 마음 속 불안이 믿음을 산산조각내었다. 당연히 차인다. 이때 방황하지만 도시에서 가장 미친 여자 애 마조리를 만나면서 잠시 잊는 듯한다. 하지만 이것도 그녀의 배신으로 산산조각난다. 목적 없고 삶의 의지조차 없던 그에게 이것은 치명타로 작용한다. 심하게 망가지고 무너진다. 도저히 회생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역시 찰리다. 보들레르다. 소설이다.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한다. 그리고 다시 진저를 찾아간다. 그녀가 말한다. “살아갈 의지. 네 두 눈에 있어.”(340쪽) 그가 ‘GO'를 말한 것도 “한 번 해보는 거야.”라는 의지가 움직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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