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지음, 황문성 사진 / 비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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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정호승 시인의 책을 읽었다. 시집으로 기억하는 것은 <서울의 예수>다. 아마 제목 때문에 이 시집을 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후 안도현의 <연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어른을 위한 동화 <항아리> 등으로 만났다. 각각 다른 장르의 두 책을 읽은 시간차는 상당하다. 그런데 이번 산문집은 그것보다 더 크다. 그리고 작가 이름 그 이상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나에게 온 이 산문집이 가슴 한 곳에 울림과 반발감을 심어줬다. 그것은 요즘 내가 듣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여러 번 썼지만 산문집을 읽기 시작한 것이 불과 10년 정도다. 그 이전에도 전혀 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거의 없었다. 철학자의 에세이를 제외하면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다. 물론 최근 10년 동안도 그렇게 많이 읽은 것은 아니다. 여행에세이를 제외하면 이 비중은 더 줄어든다. 이렇게 에세이 종류를 읽지 않은 것은 학창시절 선생의 말 한마디가 큰 영향을 미쳤다. 에세이는 나이가 많이 먹은 후 읽으면 좋다는 종류의 말이다. 이것은 워낙 소설을 좋아하는 나의 성향과 신변잡기 성격을 주로 다루는 에세이가 너무 심심해서 더욱 그랬다. 이후 조금씩 변하기는 했지만.

 

모두 3부로 나누어져 있다. 우주의 크기와 상처 많은 나무와 길이란 단어를 담은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첫 이야기가 ‘가끔 우주의 크기를 생각해보세요’다. 우주에 비해 나 자신이 얼마나 작은가에 대한 인식에서 마음의 크기로 이어지는데 가끔은 너무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인식이 이어져 오리혀 역효과를 불러오는 경우도 있다. 이것만 봐도 긍정적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삶에 대한 작가의 통찰력과 경험이 만들어낸 이야기들은 거의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삶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만들기도 하지만 기존 자기계발서의 내용을 되풀이할 때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보다 문제의 초점을 나로 축소시키는 듯한 느낌이 든다.

 

살면서 수많은 경험을 한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경험하는 것이 바로 실패다. 잘못이다. 그래서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고, 반성은 아무리 늦어도 빠르다.’는 말을 가슴에 품고 산다. 반성은 잘못과 실패를 되짚어 보게 만든다. 이것을 통해 내가 성장한다. 하지만 잘 되지 않은 것 중 하나가 ‘손해 보는 것이 이익이다’라는 말이다. 조금만 손해를 보면 서로가 평온하게 지낼 수 있는데 그 조그만 손해를 보지 않겠다고 대립하면서 벌어지는 수많은 손해는 지난 후에야 절실히 느껴질 뿐이다. 그리고 희망에 대해 말할 때 왜 사람들이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를 사회 구조적인 관점이 아닌 개인으로 축소한 것에서는 아쉬움을 느낀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실적을 높게 잡아놓아도 누군가는 반드시 그것을 달성한다. 분명 말이 되지 않는다고 시작부터 말하는데도 달성되는 실적을 보면 인간의 의지와 노력이 만들어내는 성과는 정말 대단하다. 그리고 ‘걱정은 돌 하나도 옮길 수 없다’라고 말할 때 잘못을 보면서 그 잘못을 먼저 탓하고 시작하려는 나와 이것을 벗어던지고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는 사람과의 차이가 다시 느껴졌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종교적’이라고 주장할 때는 그의 종교가 이런 인식으로 이어진 것인지 아니면 나의 인식이 이것에 미치지 못한 것인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일상의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내고자하는 작가의 노력이 돋보이는데 배울 점이 많다.

 

작가는 천주교인이다. 절에 가면 부처에 절도 한다. 편협한 종교인이 아니다. 천주교를 믿게 된 과정도 전도가 아닌 책에서 시작했다. 대단하다. 하지만 종교인들이 가진 인식의 틀은 그대로다. 많은 부분에서 삶을 평온하게 만들고 실천으로 이어진다면 유익한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이렇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부족하다. 그의 인식이 개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도 가치가 있다. 개인이 모여 사회가 이루어지니 말이다. 그럼 사회 구조를 바꾸게 되면 어떨까? 하드웨어가 바뀌면서 소프트웨어 변화 속도까지 올라가지 않을까? 덧붙이자면 이 산문집에 인용된 작가의 시들은 책 내용 때문인지 모르지만 비교적 쉽게 이해되고 강한 울림을 전해준다. 다시 한 번 작가의 시집을 펼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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