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를 구하지 않는 여자 블루문클럽 Blue Moon Club
유시 아들레르 올센 지음, 서지희 옮김 / 살림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가끔 혹은 자주 황당한 표지를 가진 좋은 작품을 만난다. 이번 소설도 그런 부류 중 하나다. 표지만 보면 질 낮은 판타지나 로맨스 소설 같다. 이런 선입견을 가지고 책에 다가 간다면 대부분 선택하지 않을 책이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 소설의 소개글이다. 2012 배리상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이란 문구와 '디파트먼트 Q'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란 구절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다 읽은 후 띠지를 보니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영화화한다는 것도 보인다. 이런 화려한 이력에 비해 결코 칭찬받을 수 없는 표지를 가졌다는 것은 큰 아쉬움이다.

 

먼저 이런 아쉬움을 쓴 것은 표지 때문에 이 매력적인 작품을 놓칠 뻔했기 때문이다. <밀레니엄>의 아성을 위협한다는 광고는 이제 많은 북유럽 소설들에 늘 사용되는 문구다. 개인적 취향에 따라 갈리겠지만 나에게는 아직 조금 부족해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별로란 것은 아니다. 재밌다. 다만 예상한 것과 좀 다른 설정과 전개로 조금 혼란스러웠고 여자가 보여준 놀라운 생존력과 자존감에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그녀를 보면서 <올드보이>가 연상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어쩌면 이 작품이 더 강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수사관 칼 뫼르크와 시리아 출신 조수 아사드 콤비의 탄생부터 이들이 어떤 활약을 펼치는지 보여주는 과정은 기존의 추리소설과 좀 다르다. 칼 뫼르크는 얼마 전에 있은 살인사건에서 한 명의 동료를 떠나보냈고 다른 한 명은 전신마비로 병상에 누워있다. 그 당시 자신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과 약간 비겁한 행동으로 그 상황을 풀어내지 못한 것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경찰서 내부에서도 그는 좋은 동료가 되지 못한다. 그러다 미결사건을 다룰 특별수사반 Q로 발령난다. 이 발령은 그를 해고할 수도 없는 상황에 이 부서로 인한 예산 확보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총격 사건으로 의욕을 잃은 그에게 이 부서는 딱이었다. 5년 전 사라진 메레테 륑고르 사건을 발견하기 전까지.

 

그냥 놀려고 온 부서지만 예산이 얼마나 배정되는지 알게 되면서 그는 조수를 요구한다. 이때 온 사람이 시리아 출신 아사드다. 그는 오자마자 사무실을 정리하고 파일을 제대로 배열한다. 몇 개는 꺼내어 읽어본다. 그러다 선택된 사건이 바로 메레테 륑고르 사건이다. 정신적으로 문제 있던 동생를 데리고 독일로 가는 배 위에서 실종된 것이다. 정치계에서 가장 각광받고 있던 그녀가 갑자기 사라졌다. 사회 문제가 되었지만 어디에서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 순간에 잊혀졌다. 그 실종이 자발적이지 않다면 바로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소설의 중심에서 칼 뫼르크가 움직인다면 또 다른 축으로 메레테 륑고르가 과거부터 현재로 넘어온다. 이 두 사람과 시간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이 교차가 그녀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극한 상황에 처한 그녀의 현재가 어떻게 될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런 설정 안에서 경찰질에 의욕을 잃은 칼 뫼르크가 조금씩 자신의 일에 다시 열정을 불태운다. 뭐 알고보면 실제 발로 뛰면서 중요한 단서를 물어오는 것은 아사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련되고 단련된 형사의 힘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사실 이 두 콤비가 제대로 된 협력을 하는 것은 거의 뒤에 와서다. 그전에 의욕을 잃은 형사는 대충 사건을 둘러보고, 아사드는 과거를 알 수 없는 인물로 등장해 가볍게만 보인다. 이런 두 사람이 자신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때 시너지 효과가 나타난다. 뫼르크는 그 당시 사건 기록을 훑어보면서 부족하고 부실한 자료를 발견하고 사건에 의문을 품게 된다. 하나씩 조사할 때마다 드러나는 의문은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계단처럼 보인다. 읽다 보면 작가가 깔아놓은 단서에 의해 범인이 누군지 알게 되지만.

 

사실 누가 범인인가보다 더 관심이 가는 것은 제목대로 자비를 구하지 않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결코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으려는 그녀다. 기압 조절되는 밀폐된 공간에서 홀로 살아가는데 한 번은 빛으로 가득하고 어떤 기간은 어둠이 모든 것을 뒤덮고 있다. 겨우 먹을 음식과 생리현상을 해결한 통 둘 만이 그녀와 함께 한다. 그 방 밖에는 그녀에게 음식 등을 주는 사람이 있지만. 이때 영화 <올드보이>가 연상되었다.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오는 그녀의 시간 속에서 과연 그녀가 살아남을까 하는 것은 이 소설이 주는 또 다른 재미 중 하나다.

 

읽으면서 손에 놓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다고는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형사들이라면 이런 실수도 하고 이렇게 범인에 다가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내부 알력과 비난에 찬 시선을 생각할 때 더욱 이런 생각이 강해졌다. 그가 느낀 죽음의 공포와 동료에 대해 가졌던 죄책감은 책 전체에 깔려 있는데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공감했다. 그리고 아사드의 존재는 해결되지 않은 몇 가지 사건과 그의 과거 등으로 인해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만든다.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는 과연 어떤 식으로 이 이야기가 만들어질지도 역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