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리퍼블릭 - Orange Republic
노희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남공화국이란 말이 있다. 한국에서 강남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가끔 보는 텔레비전에서 연예인이 강남을 아주 특별한 곳처럼 말하는 것을 보면 불쾌함이 치솟는다. 그곳에 사는 것이, 그곳에서 노는 것이 특별히 선택받은 것처럼 포장할 때 역겨움은 더 강해진다. 90년대 오렌지족이란 이름이 세상에 떠돌았다. 좀 논다는 아이들은 이곳이 필수였다. 그런데 곧 진짜 오렌지들은 자신들만의 공간을 찾아 청담동으로 옮겨갔다. 한두 번 간 그곳에서 그들은 뉴욕을 말하고 자신들을 특별한 존재처럼 표현했다. 내가 보기엔 그냥 척하는 정도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이 소설은 한 소년 준우의 성장기이자 강남 오렌지족을 다룬다. 준우가 오렌지족과 구별하는 존재로 원래 살았던 감귤과 강북에서 넘어온 탱자로 나눈 것은 하나의 말장난이다. 그가 자라던 그때는 정말 왕따라는 말조차 없던 시대다. 일본을 통해 이지메란 단어가 들어왔지만 아직 사회 전반에 퍼질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왕따니 은따니 하는 단어가 만들어지면서 학교 등의 모임에서 이런 현상이 하나씩 자리 잡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왕따 같은 것이 그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유행으로 번질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언론을 통해 퍼진 단어가 문화를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것은 오렌지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왕따라는 단어조차 없던 시대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던 그지만 하나의 사건을 통해 조직의 숨은 브레인으로 자리 잡는다. 그 사건은 같은 반 아이들의 섹스비디오다. 시기적으로 빨간 마후라보다 앞선다. 이 사건을 키운 것이 준우인데 머리를 써 해결한 것도 준우다. 이때부터 그는 그 조직의 브레인으로 음지에서 움직인다. 음모자이자 막후 조정자로 움직이는 그의 초반 활약은 대단하다. 아이들에게 왕따 당하던 신세에서 이제 한 조직의 중심으로 옮겨간 것이다. 이 변신은 감귤에서 오렌지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그것이 놀기 좋은 곳에서 질탕하게 즐기는 것이지만 말이다.

초반에 기지를 펼치고 어른 흉내를 내어 사건을 무마하는 장면은 재미있었다. 하지만 오렌지로 변한 뒤 그의 생활은 뻔한 행동의 연속이다. 그가 여자와 섹스를 하면서 정복했다고 느꼈을 때 그 상대방도 역시 그와 같은 기분이었음을 그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화려한 여자 편력과 음주와 조그마한 모험은 잘난 척하는 것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한다. 준우가 주축이 되어 새롭게 모임이 만들어진 후 그들이 펼치는 활동은 아슬아슬하다. 자신들이 대단한 줄 알지만 너무나도 무력한 존재임이 곧 드러난다. 그들은 어른을 흉내낸 소년들일 뿐이다. 

공인회계사의 아들인 준우와 술집 마담의 아들인 하진과 재벌의 딸인 신아와 부모 없이 홀로 압구정에 사는 예은은 이 소설의 주축 인물이다. 이들이 모여 결성한 조직이 치기로 가득한데 진실게임을 법칙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진실게임에서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패배한다는 법칙 말이다. 술, 섹스, 젊음의 호기와 치기 등이 어우러지면서 사랑과 우정을 말하고 느끼지만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한때의 불놀이 같다고 해야 하나? 물론 그때 그들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아니 진심이다. 하지만 한때다. 그들의 관계가 너무나도 허약한 기반과 다른 환경과 거짓과 위선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조금 본 해설에서 강남 상류층이란 단어를 쓴 것에 놀란다. 그냥 그들은 부자와 관료일 뿐인데 말이다. 그들의 세계를 정면에서 다루었다고 하지만 사실 10대들의 삶의 한 모습일 뿐이다. 쾌락과 환락과 가면과 거짓과 허세로 가득한 삶 말이다. 타고난 환경이 좋아 성공가도를 남보다 쉽게 달릴 수 있지만 그 속에 보이는 삶이 결코 진실 되어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들을 추종하고 따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때나 지금이나 양산되고 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그들도 결국 미국이나 일본 등을 모방하고 따라한 것이다. 가짜가 다른 가짜를 보고 진짜인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은 그래서 웃기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학창시절을 대단한 것처럼 간략하게 말한 것이 보인다. 쓸데없는 우월감이 지금도 살짝 남아있는데 부끄럽기 그지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