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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 손턴 와일더의
손턴 와일더 지음, 김영선 옮김 / 샘터사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첫 문장이 시간과 장소와 하나의 사건을 말하면서 시작한다. 하나의 다리가 무너져 여행객 다섯 명이 추락해 죽은 사건이다. 시간은 1714년 7월 20일 금요일 정오, 장소는 페루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다. 페루에서 가장 멋진 다리로 불리던 것이 무너졌다는 사실보다 다섯 명의 여행객에 관심을 둔 사람은 그들보다 먼저 다리를 건넌 주니퍼 수사다. 그가 왜 이 사건에 관심을 두었을까? 그것은 그 사건 속에 숨겨져 있는 신의 의지를 밝혀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희생자들 관련 인물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그 기록을 한 곳에 묶어 책으로 내었다.
교회는 이 책을 이단으로 몰아붙인다. 책과 그는 불탔지만 한 권은 도서관에 남았다. 작가는 이 책을 발견한 것을 바탕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무척 두터운 책의 내용을 줄이고, 자신의 의견을 삽입한 것처럼 꾸며서 말이다. 형식적으로 본다면 요즘 나오는 르포문학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이런 저런 생각을 뒤로 하고 책 속으로 들어가면 다섯 명의 희생자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 명 한 명 별개의 이야기지만 동시에 지역적 시대적 특성에 의해 그들을 연결하는 줄이 계속 이어진다.
다섯 명의 희생자는 몬테마요르 후작 부인, 그녀의 하녀 페피타, 피오 아저씨, 하이메라는 어린아이, 에스테반 등이다. 몬테마요르 후작 부인과 페피타를 하나의 장으로 묶고, 피오 아저씨와 하이메를 하나로 묶었다. 에스테반은 별도처럼 나오지만 쌍둥이 형제가 있었다. 작가는 왜 이들이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였는가를 이야기하기보다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그들의 아픔과 괴로움과 그리움과 사랑을 다루면서 이 다리에 오기까지를 말이다. 덕분에 운명이니 우연이니 하는 단어 대신 삶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200 여쪽에 불과한 소설이지만 매력적인 인물로 가득하다. 스페인 문장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몬테마요르 후작 부인의 사연은 불쌍하지만 강한 사랑이 느껴진다. 하녀 페피타가 본 마님의 모습이 너무 처량하고 불쌍하지만 그녀 또한 고아로 힘겹게 자란 아이다. 이 둘이 수녀원을 다녀온 후 다짐하는 장면과 그 다음에 벌어진 사건은 아이러니하다. 피오 아저씨는 최고의 배우인 카밀라 페리콜의 선생이자 아버지 같은 인물이다. 하지만 카밀라가 성공하자 나태해지고 통속적으로 변하면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인물이 카밀라의 아들 하이메다. 이 두 노소가 함께 가게 된 사연도 결코 평범하지는 않다. 마지막으로 에스테반은 쌍둥이 형제가 바로 카밀라에 대한 강한 사랑을 품고 있고, 열병을 앓고, 우연히 다친 사고로 죽는다. 이 죽음 후 그는 방황한다. 이 방황을 마치고 새로운 삶을 선택한다. 그런데 산 루이스 레이 다리를 건너다 추락한다.
이 다섯 명은 묘하게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아픔을 이겨내고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새 출발을 마음속으로 다짐했다는 것이다. 이런 그들에게 잔혹한 미래가 펼쳐진 것이다. 이 죽음에서 주니퍼 수사가 아무리 신의 의지를 발견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신의 의지를 수학적으로만 증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수녀가 마지막에 “그 다섯 사람에 대한 모든 기억은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우리 자신도 한동안 사랑을 받다가 잊힐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 사랑이면 충분하다.”(212쪽)에서 말한 대목과 상당히 다르다. 그렇다. 이 소설은 다섯 여행객의 죽음을 단 하나의 단어로 설명한다. 그것은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