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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크리스 - 거울 저편의 세계
코넬리아 푼케 지음, 함미라 옮김 / 소담주니어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거울은 참 매력적인 물건이다. 지금이야 거울이 너무나도 흔한 물건이 되었지만 고대만 하더라도 거울은 아주 신성한 물건이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메두사를 죽일 때 사용한 것도 바로 거울이다. 이처럼 거울은 귀하고 신비롭고 놀라운 물건이다. 나를 그대로 비춰주지만 동시에 굴곡에 의해 왜곡시킬 수 있는 도구다. 특히 반대로 비춰준다는 점에서 많은 문학이나 영화 등에서 거울 속 세계를 다루었다. 그만큼 매혹적이면서 신비롭다. 심리학적으로 파고들면 더 깊은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여기서 그만두고 소설 속으로 들어가자.
부제는 거울 저편의 세계다. 작가는 거울 저편의 세계로 가는 방법을 간단하게 만들었다. 한 거울을 만지면 저편으로 넘어간다. 어떤 신비한 마법이나 곤란한 일이 펼쳐지지 않는다. 어린 제이콥이 아버지의 서재에서 거울을 만진 것이 우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거울은 오직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는 자에게만 열린다.”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어린 제이콥에게 영감을 준다. 그리고 제이콥은 거울 저편의 세계로 들어간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여기서 어린 제이콥의 모험이 펼쳐지겠지만 다른 시간으로 넘어간다. 12년 뒤의 세계로 말이다.
간략하게 제이콥이 거울 저편의 세계로 넘어가게 된 계기를 설명한 후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다른 세계로 넘어간 그는 수많은 모험을 한 상태다. 나름대로 명성도 얻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그것은 그를 따라온 동생 빌이 고일족의 갈고리 발톱에게 입은 상처로 고일족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바로 이때부터 제이콥의 새로운 모험이 시작한다. 동생의 병을 고쳐주기 위해서. 하지만 이 병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검은 요정의 마법이다. 자신을 믿고 뒤따라온 동생을 구하기 위해 그는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그것이 비록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갈 정도로 위험한 일일지라도 말이다.
거울 속 세계에 대해 자세한 설명은 없다. 요정이 있고, 마녀가 있고, 인간과 고일족 세계가 공존하지만 다른 나라에 대한 부분은 생략되어 있다. 하지만 이 세계는 우리가 어릴 때 수없이 읽었던 동화가 그대로 실현되어 있다. 작가는 동화 속 주인공들이 이용한 도구나 물건뿐만 아니라 요정들도 등장시킨다. 읽으면서 낯익은 이름이나 도구들이 보일 때 상당히 반가웠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기억하고 있는 것이 많을수록 재미있고 반갑고 놀랍다. 이런 소재를 거울 속 세계에서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또 다른 쓰임새를 만들어냈다. 단순한 패러디가 아닌 오마주이자 변주다.
처음엔 약간 허술한 진행으로 아쉬움을 줬다. 괴물이나 적과의 싸움이 사실 긴장감을 주지 못했다. 제이콥의 모험이 치밀하게 짜인 구성 속에서 펼쳐지기보다 동화 속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낯익은 도구와 이름과 이어지는 모험 등으로 몰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과 결말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제이콥의 모험과 더불어 빌에 대한 강한 사랑과 여우 등의 복잡한 감정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특히 여우는 다음에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지 기대하게 만든다. 이것은 제이콥의 아버지가 거울 속 세계에 끼친 영향과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함께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다. 표지의 강한 인상이 책을 다 읽은 지금에도 여운을 남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