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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들의 비밀 생활
수 몽크 키드 지음, 최정화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1964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시대 그 곳의 분위기를 잘 모르지만 영화나 다른 소설 등에서 본 인종문제가 이 소설에도 짙게 드리워져 있다. 특히 존슨 대통령이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 공민권법을 발표 후 분위기는 굉장히 사실적이다. 백인들이 기득권이나 우월권을 상실한 것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이 폭력으로 이어지는 장면들은 무시무시하다. 공권력조차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일방적으로 백인 편을 드는 것을 보면서 혹시 지금 우리도 이런 행동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바로 이런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한 소녀의 성장을 조용하게 보여준다.
열네 살 소녀 릴리는 어릴 때 엄마가 죽었다. 거칠고 폭력적인 아빠 밑에서 엄마에 대한 환상을 품고 살아간다. 다른 여자 아이들이 누리는 조그마한 행복을 그녀는 상상만으로 채울 뿐이다. 일 년 내내 같은 옷에, 부스스한 머리는 어린 소녀의 감성을 마구 헤집어놓는다. 이런 그녀에게 유일한 친구는 흑인인 로잘린이다. 그녀와 투표자 등록을 가다가 백인 우월주의자와 시비가 붙는다. 일방적인 피해자인 로잘린과 릴리가 오히려 수감된다. 백인인 릴리는 아빠가 오면서 풀려나지만 로잘린은 흑인이란 이유로 더 갇혀 있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다시 이 백인들이 경찰서로 찾아와 경찰 앞에서 폭력을 행사하고 간 것이다. 이 때문에 로잘린은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릴리는 로잘린을 구해내려고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흑인인 로잘린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녀가 풀려나오면 그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그녀를 죽일 줄 모른다고 위협을 준다. 이에 릴리는 로잘린을 병원에서 탈출시킬 멋진 계획을 짠다. 이 계획이 성공하고, 그들은 함께 여행을 떠난다. 물론 릴리가 가출하게 된 데는 단순히 로잘린 탓만은 아니다. 릴리 엄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아빠에게 듣고 심리적인 혼란을 느꼈고, 폭력적인 아빠에게서 벗어나고픈 마음과 남겨져 있던 엄마의 사진에서 본 장소를 가고픈 마음이 결합된 결과다. 그 여행길에 릴리는 검은 성모상을 라벨로 사용하는 벌꿀 병을 보고 그곳으로 향한다. 바로 그곳에서 그녀는 아픔과 그리움과 괴로움을 거치면서 성장한다.
엄마의 흔적을 따라 찾아간 곳에 살고 있는 흑인 자매들은 조금 특이하다. 양봉으로 좋은 꿀을 생산하고 있지만 과거 이력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 쌍둥이 자매의 죽음으로 통곡의 벽 같은 것을 만들어 놓고 그곳에서 슬픔을 씻어내는 메이, 결혼식에 달아난 신랑 때문에 사랑하는 남자의 청혼을 계속 거절하는 준, 그녀들의 맏언니이자 집안의 중심을 잡아주고 검은 성모상을 모시는 오거스트, 릴리 또래의 흑인이지만 너무나도 매력적이고 큰 꿈과 용기를 지닌 재크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이 릴리 등과 어울리면서 보여주는 삶은 때로는 깊은 슬픔과 아픔을 전해준다. 하지만 결코 밝은 미래의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바로 이런 부분이 매력적이다. 결코 억지스런 상황으로 릴리를 몰고 가서 상황을 한꺼번에 풀려고 하지 않고, 차분하면서도 사실적으로 감정으로 쏟아내면서 나아가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읽히면서 몰입하게 만든다.
빠르게 재미있게 읽었다. 한 소녀의 성장을 본다는 재미도 있지만 약간은 밋밋할 수 있는 이야기를 시대적 배경과 사실적인 진행으로 엮었다. 시대의 한계와 아직도 진행 중인 부분은 현재의 우리를 환기시키고, 도저히 멈출 수 없는 감정의 폭주와 혼란은 시간 속에서 현실적인 문제로 풀어낸다. 각 장마다 벌들의 생활에 대해 쓴 인용문은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릴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의 모습일 수도 있고, 우리의 삶일 수도 있다. 그것은 각자가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특히 마지막 문단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나의 상상은 그들의 그 후 삶으로 뻗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