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연대기 샘터 외국소설선 5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김영선 옮김 / 샘터사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인적으로 레이 브래드버리의 작품들은 취향에 완전히 맞지는 않다. 하지만 읽고 난 후 그 여운은 다른 어떤 소설에 뒤지지 않는다. 그것은 SF문학에서 취향이 밀리터리SF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몇 유명 작가들의 경우는 다르다. 그중 한 명인 아서 C. 클라크는 치밀한 과학적 묘사와 광대한 상상력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처음에 들기는 힘들지만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그래서 늘 그의 작품이라면 관심을 가졌고, 재미있게 읽었다.

그럼 레이 브래드버리는 어떨까? 이 작품도 예전에 읽었는지는 모르지만 정확하게 기억하기로 처음 읽은 작품은 <화씨 451>이다. 사실 그리폰북스 판으로 읽으면서 큰 재미를 누리지 못했다. 사전 정보 없이 읽었고 예상과도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것은 르귄의 <어둠의 왼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고, 다른 소설을 읽으면서 이 작품이 몇 번이나 떠올랐는지 모른다. 언젠가 다시 읽으면서 처음 읽을 때 놓친 재미를 찾아보려는 작품 중 하나다. 

사설이 좀 길었다. 이 작품은 연작이면서도 독립적이다. 1999년 1월에 시작하여 2026년 10월까지 시간과 화성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앞에 나온 인물이 나중에 다시 나온다는 점과 시간 순이란 점에서 연대기에 부합되고 연작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마지막 시간이 가장 먼저 발표되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 장인 <백만 년짜리 소풍>은 중간의 <어셔2>나 <하늘 한가운데 난 길로>와 더불어 작가의 성향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이 작품들이 발표된 시기가 40년대 후반임을 감안하면 그가 느끼는 미래가 얼마나 암울한지 알 수 있다.

<화성침공>이란 고전 영화에서 침략자는 화성인이다. 그런데 이번 소설에서 화성을 침략하는 것은 인간들이다. 물론 작가는 물리적인 공격으로 화성인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초기에는 화성에 도착한 탐사대가 화성인들에게 죽는다. 이 과정을 하나의 장으로 각각 풀어내는데 외계로부터의 방문이 주는 공포와 낯설음이 잘 나타난다. 그리고 허버트 조지 웰스의 <우주전쟁>에서 침략자 화성인을 몰살시킨 바이러스가 화성에서도 역시 그대로 적용된다. 이것은 하나의 오마주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하나의 시간이 하나의 장이 되지만 그 분량은 각각 너무 다르다. 한쪽짜리도 있고, 몇 십 쪽짜리도 있다. 하지만 이 시간들은 모두 연결되고, 각각의 의미를 분명하게 전달한다. 어느 장은 환상이 교차하고, 어느 장은 그 시대의 현실을 지극히 암울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의 바닥에 흘러가는 소재와 주제는 인간, 사회, 인종문제, 전쟁, 검열제도, 사랑, 물질만능 등이다. <어셔2>가 함축적인 <화씨 451>이자 변주라면 <하늘 한가운데 난 길로>는 그 시대에 느낀 인종차별 문제의 암울한 미래를 알 수 있다. 이것은 다시 지구에서 펼쳐진 전쟁 때문에 지구로 모두 돌아간 인류의 편협한 조국애를 풍자적으로 그려내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아메리카 대륙 침략사 혹은 학살과 맞닿아 있는 것은 의미심장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사실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하다는 다른 사람의 평에는 공감하지 못한다. 어느 부분에서 그런 것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전체적으로 그런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화성이란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화성이주민과 화성인의 삶은 환상의 외피를 뒤집어쓰고는 있지만 현실적이다. 거기에 공감하면서 이야기는 SF의 향기를 스스로 지워간다. 이 때문에 SF문학보다 환상소설로, 사회 혹은 문명 비판서로도 읽힌다. 블록버스트영화 같은 SF소설을 기대한 사람에겐 실망을 주겠지만 그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에겐 다시금 그의 문학이 주는 여운과 사색으로 즐거운 시간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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