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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
빅토르 로다토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나는 끔찍해지고 싶어. 끔찍한 짓을 하고 싶어”란 문장으로 시작한다. “지겹고 지겹고 지겨운 게 내 삶인데.”를 외치는 열세 살 소녀 마틸다를 이렇게 만났다. 왜 이렇게 어린 소녀가 이런 말을 하는지 호기심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 시선을 끈 문장은 이야기로 파고들기보다 짧은 단문으로 이어지는 문장에 더 시선이 갔다. 간결하면서 독백체로 이어지는 문장은 매력적이다. 문장에 눈길이 더 가면서 첫 문장에 받은 인상은 왠지 모르게 빛이 조금은 바랬다.
마틸다의 언니 헬렌은 기차역에서 죽었다. 처음 마틸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누군가가 그녀를 밀어 죽였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말이다. 헬렌은 자살했다. 이런 거짓말은 그녀 안에서 사실처럼 굳어져 있었다. 언니의 자살이 그녀에게 강한 충격을 준 것이다. 그리고 부모들의 삶은 뒤죽박죽이 되고, 강하게 흔들리면서 중심을 잡지 못한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마틸다는 현실을 부정하고, 죽은 언니에게 더 집착한다. 광고 글에 스토킹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헬렌. 그녀는 예쁘고 똑똑했다. 마틸다의 친구 애나가 예쁘기만 한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일이다. 그런 그녀가 자살을 했다. 왜일까? 마틸다는 언니가 숨겨놓은 수많은 기록들을 찾아내고 읽는다. 하지만 그 기록들은 그녀만의 것이지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는다. 언니의 기록을 들여다보고 숨겨진 삶을 하나씩 알게 되지만 그것으로 자살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열세 살 소녀가 알고 있는 세계와 열여섯의 예쁘고 똑똑한 소녀가 알고 있는 세계는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나이 세 살 차이가 크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처럼 어린 나이의 성장기 소녀라면 다르다. 경계선 이쪽과 저쪽 이상으로 큰 차이가 있다. 그것은 언니의 흔적을 따라가면서 그녀가 하나씩 알게 될 것들이기 하다.
열세 살 소녀가 일탈을 꿈꾼다고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친구들과 함께 지하실에서 하룻밤을 보내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부모에게 어리광 같은 투정을 부리지만 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이런 그녀의 행동이 단순히 언니를 잃었기 때문일까, 하고 의문을 가지는 순간 또 다른 하나의 사실이 드러난다. 언니가 자살한 아침 크게 싸웠고 죽으라고 소리친 것이다. 어린 소녀에게 이것은 너무나도 큰 상처고 충격이다. 물론 이 싸움만이 그녀를 이렇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언니의 죽음은 그녀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너무 많은 충격을 주었고, 이 때문에 가족은 본래의 힘과 사랑을 잃고 만다. 사실은 이 상황이 그녀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헬렌의 죽음과 9.11사건과 이라크 사건 등과 같은 것을 같이 다룬다. 테러의 공포를 곳곳에서 풀어놓는다. 9.11 이후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라크 침공 같은 문제에서 자기 집은 군인으로 참가할 일이 없다는 말에선 소시민들의 위선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리고 마틸다가 중동여인을 기차에서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고문 등의 공포를 느끼는 것은 신랄한 정치비판을 담고 있고, 중동 여인의 아이들 이름은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테러 공포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반전과 종교로까지 상징과 암시는 이어진다. 아는 것이 부족하여 충분히 다 발견 못한 것은 조금 아쉽다.
성장소설이란 것과 오프라 윈프리가 추천했다는 사실에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물론 이것은 열세 살 소녀에게 공감하지 못한 나의 문제도 있고, 환경적으로 집중할 상태가 아닌 탓도 있다. 이것은 마지막 장을 읽는 순간까지 이어졌다. 아마 문장이 주는 힘과 매력이 없었다면 더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미래는 모든 것의 가장 큰 비밀”(336쪽)이라고 말할 때 그녀의 힘겹고 지겹고 참혹하고 어두웠던 과거가 미래에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궁금하게 만든다. 다시 충분히 집중할 시간을 낸 후 읽는다면 마틸다의 삶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