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의 나라 백성의 나라 - 상 - 북리 군왕부 살인 사건
김용심 지음 / 보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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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재미있는 내력을 가지고 있다. 2005년도에 <천자의 나라>란 제목과 김유인이란 이름으로 보리의 자회사인 오두막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었다. 겉장은 새롭게 만들었지만 나머지는 이전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재활용 혹은 재간을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사실 처음엔 이 사실을 몰랐다. 책을 모두 읽은 후 잠시 여운을 즐기면서 우연히 읽게 된 글 속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니 절판된 책과 함께 나름 좋은 평을 받은 것이 나온다. 살려낼 가치가 있었다는 보리 출판사의 글에 어느 정도 수긍한다. 재미 측면과 정치의 의미 둘 다를 생각해도 말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그 유명한 판관 포청천에서 그를 도와주었던 협객 전조다. 남협으로 불리며 모두에게 사랑받았던 전조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와 동시에 그 당시 천자였던 인종이 전조와 함께 한다. 기본 줄거리는 무협소설을 따르지만 그 바닥엔 인종이 어떻게 그런 현군이 되었는지 상상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 점이 바로 무협의 재미와 함께 정치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무협의 형식을 빌린 역사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종을 통해 지속적으로 그 시대와 정치에 대한 깨달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 줄거리는 전조가 포청천의 명을 받고 북리 군왕부의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과정이다. 그런데 이 살인사건의 범인을 책 중반도 가기 전에 이미 누군지 알게 된다. 살인사건과 이것을 해결하는 과정은 사실 큰 매력을 주기 힘들다. 그리고 무협소설이 지닌 강한 무공에 대한 열망과 대결이 많이 나오지도 않는다. 남성 작가라면 남협 전조를 중심으로 많은 무공대결을 넣어서 볼거리를 늘렸을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여자이자 이런 대결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오히려 매력적인 캐릭터 만들기에 더 주력한다. 이 캐릭터들과 그들이 함께 나누는 대화가 사실 이 소설의 가치를 더 높여준다. 

전조. 그는 천하제일검이지만 답답한 남자다. 살검보다 활검을, 한 사람을 죽이기보다 한 사람을 살리길 더 원한다. 자신의 강함을 내세우기보다 부드럽게 굽히고 들어가면서 상황을 넘어가려고 한다. 하지만 강호는 강즉정의 세계다. 강한 것이 정의인 곳에서 그의 부드러움은 약자의 비굴함으로 보일 뿐이다. 이때 드러나는 전조의 무공은 진정 강한 것이 무엇인지, 왜 무공을 수련해야 하는지를 은근히 알려준다. 그리고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고지식한 그의 행동은 뒤로 가면서 우연과 천운이 결합하면서 억지스럽게 다가오지만 그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어준다. 그 덕분에 그의 매력은 더욱 빛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인종. 그는 작가가 역사의 시간을 살짝 바꿔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만들고 전조를 통해 갑자기 변한 정치 개혁의 원인을 찾아보려고 한다. 무협에서 자주 나오는 인피면구를 쓰고 암행을 하던 중 전조의 협객행을 보고 반한다. 그 후 북리 군왕부까지 따라가면서 수많은 사건을 겪고, 정신적으로 정치적으로 성숙해지고 많은 깨달음을 얻는 인물이다. 이것은 이전 제목 <천자의 나라>라 지닌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보여준다. 천자(天子)를 단순히 만인지상의 존재인 하늘의 아들로 규정하기보다 땅위에서 사는 백성들도 바로 하늘의 아들임을 내세우면서 기존 인식을 깨트린다. 바로 이 부분이 평범한 무협소설의 구성과 재미를 넘어 가치를 논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 외 다양한 인물들이 소설의 재미를 더해준다. 아령, 북리현, 승휴 등을 비롯한 조연 혹은 단역들이 재미뿐만 아니라 감정의 깊이도 더해주면서 그 시대를 재구성한다. 애틋한 사랑과 강렬한 욕망과 무공대결이 잘 결합하여 책읽기의 속도를 높여준다. 잘 만들어진 무협소설로는 분명히 부족함이 있지만 멋진 캐릭터와 그들의 대화 속에 담겨 있는 역사의식과 정치철학은 단순한 재미만이 아닌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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