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 원숭이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은 대부분 빠르게 재미있게 읽힌다. 가끔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힘든 경우도 있다. 이번 작품은 후자의 경우다. 사실 앞부분을 읽으면서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부분을 보면서 혼란스러웠다. 엑소시스트가 나오고, 서유기의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이 둘의 접점을 찾기 위해 머리는 빠르게 움직였다. 당장 찾아질 리가 없다. 그런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빠지면 후반부에 왜 이런 구성이 생겼고, 서유기가 등장하게 되었는지 알게 된다.

내 이야기와 원숭이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내 이야기의 주인공은 전자제품을 파는 엔도 지로다. 부업으로 엑소시스트를 한다. 그가 이런 부업을 하게 된 이유는 이탈리아 유학을 갔을 때 친구의 아버지이자 신부이자 엑소시스트를 따라다니며 경험을 쌓았고, 돌아와서는 이런 경험이 알려지면서 의뢰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어릴 때 짝사랑하던 옆집 헨미 누나가 히키코모리 아들을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바로 여기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엑소시스트와 히키코모리라는 이상한 구도가 성립되는 것이다.

원숭이 이야기는 서유기 속의 손오공이 화자다. 하지만 등장인물은 이가라시 마코토라는 사고원인 조사원이다. 그는 최고의 조사원으로 꼽히는데 그것은 감정의 개입을 배제한 상태에서 냉철하게 인과관계를 쫓아가기 때문이다. 그에게 내려진 임무는 전산조작의 실수로 생긴 300억 엔의 오발주 사고 원인을 조사하라는 것이다. 그의 조사결과에 따라 프로그램 제작회사와 증권회사의 희비가 교차할 수 있다. 조사를 시작하는데 면담 대상들이 서유기 속 등장인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전반부의 혼란 대부분이 이런 환상과 손오공의 개입에서 비롯한다.

지로는 타인의 고통이나 슬픔을 느끼면 SOS 신호를 받은 것처럼 달려가 도와주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견디기 힘든 사람이다. 이런 마음 때문에 엑소시스트 의뢰가 왔을 때 달려간 것이다. 첫사랑 헨미 누나가 히키코모리 아들 마사토 문제를 상당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것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면서 다음 약속을 잡은 것이다. 마사토가 현재처럼 변하게 된 시점을 찾아가던 중 한밤중에 노래하는 특이한 사람들을 만난다. 이 만남은 과거의 사건과 마사토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정보들이 마사토의 히키코모리 문제를 단숨에 깨트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코토의 조사는 사고가 발생한 팀으로 먼저 움직인다. 그곳에서 만난 까까머리 과장은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조그마한 대답을 제공하지만 그 원인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지는 않는다. 이제 조사는 오발주 사건을 일으킨 다나카 도루로 옮겨간다. 그가 다나카 도루를 만나로 가는 도중에 생긴 조그마한 에피소드와 장소는 내 이야기와의 접점을 제공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든다. 그리고 다나카 도루와의 면담은 또 다른 원인에 대해 단서를 던져준다. 그 단서가 다시 그 원인에 대한 의문을 던지지만 말이다.

현실의 내 이야기와 환상의 손오공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바뀌면서 그들은 만난다. 이 만남은 앞에 나온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동시에 한 번 더 비틀고 더 깊숙이 파고들고 풍성하게 만든다. 악마, 폭력, 무의식, 죄의식, 정의 등의 무거운 개념들이 그 속에 뿌리를 내리고 다양한 사고와 의미를 탐색하게 만든다. 지로의 과거 엑소시스트 경험은 악마에 대한 서양의 선악 개념을 살짝 비틀고, 현실 속에서 그 원인을 찾고자 한다. 오발주 사건은 소설 속 모든 인과관계의 종착점이자 또 다른 의미를 던져준다. 이야기의 주술적 힘이 가능한가? 하고 말이다. 

빠르게 읽고, 혼란스러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지금 이 순간 잘 짜인 구성과 작가가 곳곳에 던져놓은 이야기들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별개의 것처럼 흘러가다 하나로 이어지고, 인과관계를 치밀하면서도 교묘하게 연결하여 다시금 소설 속으로 생각을 던지게 만들고, 끝없이 상상력을 펼치게 한다. 그리고 손오공 분신 이야기는 대단히 흥미롭고 놀랍다. 서유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원작에 대한 오마주가 엿보이며 그 의식의 끝자락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다. 작가가 가장 쓰고 싶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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