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게임
카린 알브테옌 지음, 임소연 옮김 / 살림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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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놀이동산에 버려진다. 장면이 바뀌어 노부인 예르다 페르손이 죽고, 주택관리사 마리안네는 집안을 정리한다. 깔끔한 예르다의 집 냉장고에서 발견된 것은 스웨덴 현대 문학의 거장 악셀 랑네르펠트의 친필 사인 도서다. 거장의 책들은 심하게 훼손되어 있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의문을 가진다. 다시 장면은 곧바로 악셀의 아들 얀-에리크의 현재로 넘어간다. 그는 아버지의 작품을 강의하면서 생계를 누리고, 아버지의 후광을 입고 강연장에 온 여자를 유혹한다. 이때부터 소설은 본격적인 이야기를 펼친다.

북유럽 심리 스릴러란 문구가 있지만 책 후반부까지 스릴러라고 느낌을 거의 받지 못했다.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스릴을 느낄만한 장면들이 그다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얀-에리크에서 시작하여 그의 아내 루이세, 아버지 악셀, 어머니 알리세를 그쳐 크리스토페르에 이르게 되면 그들의 현재와 과거에 점점 빠져들게 된다. 그들이 돌아가며 내뱉는 내밀한 사연들이 낯설음을 넘어 신선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추악한 욕망과 자신들도 모르게 뒤틀린 삶의 흔적들이 전면으로 나오며 강한 흡입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얀-에리크는 강연에서 늘 요제프 슐츠라는 2차 대전 독일군 병사가 아버지 악셀 랑네르펠트의 작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그가 한 행동은 무고한 시민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자신도 그 무리가 끼어 사살당한 인물이다. 정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린 그의 행동이 그의 작품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단순히 멋지고 훌륭한 하나의 사연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의 대표작 <그림자>와 더불어 이 소설 전체에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그리고 왜 스릴러라고 불리는지도 알게 된다.

이야기는 각 등장인물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현재와 과거를 풀어내는 방식이다. 한때 열렬하게 사랑했던 아내 루이세에게 성적 욕망을 느끼지 못하는 얀-에리크, 그와 결혼하면서 촉망받던 작가의 길을 포기한 루이세, 노벨 문학상을 받은 남편을 두었지만 한때는 그와 함께 문학을 발표했던 알리세, 이제 풍에 걸려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정신만 살아있는 악셀. 그리고 첫 장면에서 버려졌지만 다 자란 크리스토페르. 이들은 예르다의 죽음을 통해 이어지고, 마리안네의 전화를 통해 과거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과거 속에서 하나씩 드러나는 추악한 욕망과 거짓과 위선과 죽음은 뒤로 가면서 점점 더 힘을 발휘하고 한순간 폭발한다.

루이세와 알리세의 과거와 현재는 가정이란 틀 속에 갇힌 두 지식인 여성들이 안주하면서 벌어질 수 있는 삶의 한 측면을 보여준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삶의 시간을 내주면서 그녀들의 삶은 종속적으로 변하고, 문학적 재능은 잊혀진다. 그 속에 펼쳐지는 가정의 위선과 거짓은 삶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이것은 루이세가 알리세의 현재를 보면서 자신의 미래를 예감하는 장면에서 더 부각된다. 그리고 악셀 일가의 어두운 과거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들은 바로 이런 위선과 거짓에서 비롯했다. 

사실 처음에 읽으면서 하나의 질문, 에피소드 등을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이것들이 뒤로 가면서 껍질을 깨고 나와 놀랍고 추악한 사실들을 알려준다. 어릴 때 자동차 사고로 죽은 줄 알았던 얀-에리크의 동생 안니카의 자살에 대한 진실은 이 모든 위선과 거짓과 욕망과 탐욕이 뒤섞인 결과물이다. 어떻게 수용소 생활을 그렇게 잘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이나 그림자가 지닌 의미 등은 다시 한 번 더 내용을 되짚을 때 점점 분명하게 드러나고 감탄하게 만든다. 그 속에 펼쳐지는 욕망에 대한 깊은 심리 묘사는 아! 하고 탄식을 내뱉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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