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헨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4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
버나드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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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이 원서능력자가 아닌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원서를 읽을 수 없어서 좋아하는 작가의 시리즈나 미출간작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요즘엔 다르다. 그렇지 않아도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한데 좋은 작가들을 너무 많이 알고 있다. 쌓여 있는 책도 많은데 원서까지 읽고 쌓아야 한다면 가뜩이나 부족한 공간과 돈이 더 부족해질 것이다. 버나드 콘웰은 이 책 포함하여 두 권이 번역 출간되었는데 나에게 안타까움과 다행을 동시에 줬다.

스톤헨지.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다. 이곳을 두고 수많은 학설이 오고 간다. 이 거대한 석상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하여 각 방위가 천체운행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 등과 결합하여 수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어떤 작가들은 이곳에서 비밀 종교 의식을 펼치면서 이야기를 풀어내었고, 현재도 이곳에선 종교의식이 펼쳐진다고 한다. 하지만 그 정확한 용도나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확한 답이 없다. 

작가는 불가사의한 스톤헨지의 비밀을 선사시대로 우릴 인도하고 그 거대한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그 속엔 그 시대의 삶, 사랑, 탐욕, 마법, 음모, 전투, 모험, 과학 등이 담겨있다. 그 중심엔 해와 달의 신이 있고, 배다른 세 형제가 얽히고설킨다. 기본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지만 그 시간은 현대의 것과 다르다. 특히 형제 중 사반 중심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그의 삶은 굴곡이 심하다. 부족장이었던 아버지가 큰형에게 죽은 후 노예로 팔려가고, 그 상인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고, 노예로 변한 것이 또 다른 음모임이 드러난 후에도 그의 삶은 계속해서 수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이 변화 속에서 성장하는데 가장 이성적이고 과학적이면서 인도적인 인물이다.

이야기는 사반이 큰형 렌가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사연에서 시작한다. 성인식을 아직 치르지 않은 소년 사반이 큰형에게 사냥 등을 배우기 위해 숲으로 들어갔다가 이방인을 발견한다. 이방인을 환대하는 것을 예상하지만 이 시대 이방인은 약탈자이자 도둑이다. 이방인을 뒤쫓아 가서 그를 죽인다. 그가 가진 물건 중 황금이 있다. 형은 자신이 가지려고 하고, 동생은 부족장인 아버지에게 가져다주려고 한다. 이 때문에 충돌이 생기고, 이 기회를 노려 사반을 죽이려한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황금이 이 거대한 상상력을 움직이는 동력원이고, 모든 사건의 원인이 된다.

렌가가 호전적인 전사로 폭력과 죽음을 보여준다면 둘째 형 카마반은 영악하고 음모와 마법으로 사람을 휘어잡는 인물이다. 사실 이 소설 속에서 가장 신비하면서도 광기에 찬 인물이다. 불구로 태어나 아버지에게 버림받았지만 태양신 슬라올의 사제임을 자청해 나서고, 달의 신 라하나를 숭배하는 여마법사 사나스에게 마법을 배우고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지식을 쌓은 후 명성을 떨친다. 미신이 넘실거리던 그 시절 어느 정도 자연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한계가 분명하고, 슬라올에 대한 광신은 스톤헨지를 만들게 하는 원동력이지만 모든 폭력과 광기의 또 다른 표출이다. 

한 소년의 성장을 따라가다 만나게 되는 수많은 부족의 삶과 사랑과 종교가 생생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그들에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자연 현상은 신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불러오고, 현재에서 보면 아주 조그마한 지식이 거대한 저주와 마법으로 둔갑하여 그 시대를 지배한다. 그 중에서 인상적인 설정은 성인식에서 실패하여 전사가 되지 못한 아이들이 사제가 되는데 이들이 점점 또 다른 권력을 잡고, 전사들에게 공포를 심어준다는 것이다. 육체적 능력이 부족한 그들이 지식으로 지배계급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을 보면서 세상의 변화를 조금은 알게 된다.

전작에서도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질 못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손에서 떼기가 쉽지 않다. 하나의 돌을 옮기기 위해 그들이 들이는 공력과 시간을 생각하며 한 장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이 세 형제의 대립과 갈등이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신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찬양은 두려움의 또 다른 얼굴임을 보게 되고, 고대인의 삶에서 시간의 옷을 벗겨내면 바로 우리 자신이다. 세밀한 묘사와 생동감 있는 등장인물과 거대한 상상력이 빚어낸 이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이 지닌 매력에 흠뻑 젖어들었다. 갑자기 스톤헨지를 보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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