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동양신화 중국편 - 신화학자 정재서 교수가 들려주는
정재서 지음 / 김영사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중국 관련 책을 읽다보면 그곳에 나오는 수많은 신들과 괴이한 동물들에 놀라고 신기하게 생각했다. 특히 <산해경>을 인용할 때면 언제 꼭 한 번 읽어야지 마음을 먹지만 왠지 쉽게 손이 가질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읽은 책들 속에서 중국 신화와 역사를 통해 많은 인물과 이야기를 만났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지 못했다. 역사의 흐름은 알게 되었지만 단순히 중화주의의 부산물로 가득했기 때문에 살짝 거부감이 생겼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최근에 나온 연구결과가 이 사실들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민족주의는 최근 엄청난 역사 왜곡을 실현하고 있다. 한때 전 국민을 분노하게 만든 동북공정을 비롯해서 얼마 전까지 그렇게 오랑캐 족이라고 욕했던 만주나 몽골에 대해서도 자국의 역사 속으로 편입시키고 있다. 이런 일련의 작업이 거대한 영토와 수많은 소수민족을 중국이란 하나의 국가 속에 통합하기 위한 하나의 필수적인 방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 사라져 가는 수많은 역사적 사실과 유물과 유산은 왜곡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이 작업이 완료된 시점에서는 원 나라나 청 나라가 중국이란 거대한 제국 속에서 분열과 통합을 통해 발전하고 있는 과정이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는 그 민족의 거대한 업적이나 실패는 역사 속에 조용히 사라져 갈 것이다.

왜 중국의 역사 왜곡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느냐고, 이 신화 이야기가 이런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저자가 한국인이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염제 신농의 동이계와 황제의 화하계의 대립을 중국 신화 속에 넣어서 해석하고 있다. 이것은 중국 고대 문헌의 원전 자료를 인용하고 연구한 결과물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저자는 기본적인 서술 방향을 오리엔탈리즘과 중화주의라는 두 가지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제3의 시각에서 볼 것을 제안하고, 이것을 중국 신화의 상호 텍스트성, 중국 신화의 해체 및 동양 신화적 시각에서 다시 읽기 등으로 구체화했다. 그 덕분에 놀랍고 신기하고 괴상하고 독특하고 과장되고 허황된 것 같은 이야기 속에서 숨겨진 의미와 변질된 역사를 조금씩 파악하게 된다. 단순히 신화의 나열이나 서술을 넘어 중국 신화와 서양 신화를 비교하고, 한국 신화와도 비교하는 작업을 통해 중국 신화가 중국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동양 신화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신화란 무릇 인간이 잃어버린 태초의 본성으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길잡이가 아닌가!”(33쪽)란 문장을 통해 중국 신화 속에서 우리가 찾아야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현재의 중국 한족이 하나의 민족이 수천 년을 이어온 것이 아니라 수많은 민족들의 결합임을 말하고, 염제 신농 등을 통해 중국 문명이 처음에 동방에서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사실 이 부분은 최근에 많은 학자들이 중국 원전 속에 가려진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고 해석하고 비교한 결과물이다. 한국인으로 단순히 기분 좋은 연구일 수 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것도 또한 사실이다.

책은 11부 3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늘과 땅이 열리는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신화 속 인물들과 영웅들을 거친 후 이상하고 괴상하고 신기하고 별난 사람이나 사물들을 보여준 후 낙원과 지하 세계로 마무리한다. 이 과정은 대부분 연대순으로 이어지는데 신화 속 인물이 후대에 어떻게 변형되었는지 알려주어 신화가 완전한 것이 아닌 시대 속에 변형이 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엔 중화주의나 유교의 이데올로기나 가부장적 사고 등이 깊이 작용하고 있다. 또 이런 신화를 서양 신화와 비교 분석하여 유사성과 차이점을 알려주는데 여기서 동서양의 철학 차이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동양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거대한 유산을 마주하고, 역사 속에 그 의미가 불분명한 것들의 미스터리를 다른 시각에서 보게 한다.

이 책의 가치는 아주 많다. 중국 신화를 중국에 한정시키지 않고 동양으로 확대한 것을 비롯하여 서양 신화와 비교, 분석한 것이나 동양 신화를 잘 구분, 정리하여 그 흐름을 잘 파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엄청나게 풍부한 자료 사진은 과거와 현대의 상상력이 빚어낸 결과를 비교할 수 있게 만드는 동시에 활자로 묘사된 것을 실제로 볼 수 있게 했다. 덕분에 사진에 나 자신의 상상력을 덧칠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한 동양 신화로 읽어도 흥미롭고 재미있지만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또 다른 즐거움과 재미를 발견하게 된다. 저자의 다른 저서에 어쩔 수 없이 관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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