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래의 발소리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섀도우> 이후 두 번째로 미치오 슈스케의 책을 읽었다. <섀도우>에서 서술트릭을 사용하여 나를 완전히 속였는데 이번 단편집도 마찬가지다. 많지 않은 분량에 여섯 편의 미스터리가 담겨 있는데 그 한 편 한 편이 수준급이다. 앞부분을 읽으면서 뻔한 결말일 것이라고 예상하는 순간 반전이 일어난다. 그리고 급작스럽게 솟아나는 소름은 멋지고 섬뜩하다. 반전과 더불어 인간의 심리 밑바닥을 훑고 지나가면서 어둠을 이렇게 잘 표현한 작품도 흔치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마음에 드는 단편집이다.

<방울벌레>는 11년 전 죽은 친구S의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이야기다. 친구를 죽이고 묻은 그에게 들려오는 방울벌레 소리는 그의 신경을 건드린다. 하지만 이 소리 뒤에 숨겨진 사실은 과거의 회상을 거치면서 반전이 펼쳐진다. 방울벌레 소리가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감정과 심리의 복잡한 흐름은 앞에 펼쳐놓은 단서들과 더불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짐승>은 개인적으로 가장 강한 인상을 받은 작품이다.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던 화자가 넘어진 의자 다리 속에 적힌 문장을 보고 S의 살인사건 내막을 파헤친다는 내용이다. 뛰어난 가족들에 비해 열등감을 느끼고 있던 그가 신문기사 등을 통해 진실에 다가가는 모습은 어쩌면 전형적이고 뻔한 전개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S의 살인사건의 전모가 짐작된다. 하지만 이 소설의 백미는 마지막 반전에 있다. 반전은 섬뜩하고, 구성은 반전과 맞물려 제목과 소설 전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과거 사건을 둘러싸고 회상과 추억이 뒤섞이면서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작품이 <요이기츠네>다. 학창시절 악행이 현재의 그를 휘감아오고, 이 때문에 환상 속으로 현실이 매몰된다. 나쁜 친구 S 때문에 사건이 벌어졌지만 이것은 단순히 핑계다. 용기가 부족했고, 자신 속에 담겨 있는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 축제와 짧게 결합한 작품인데 심리 묘사가 너무 혼란스럽다.

<통에 담긴 글자>는 반전에 반전을 보여주는 단편이다. 거짓이 이어지고, 속임수가 계속되면서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유감이다’란 이 짧은 문장에서 시작되는 사건의 전말은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무섭고 강렬한지 보여준다. 문장과 단어 하나하나가 마지막 장면에서 예상하지 못한 사실들을 펼쳐놓게 만든다. 그리고 살인 그 이상으로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책제목 술래의 발소리가 나오게 된 <겨울의 술래>는 일기 형식이다. 약간 밋밋하게 진행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밝혀지는 사실과 행동들이 가슴 한 곳을 서늘하게 만든다.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마음은 망가지지 않았다.’란 문장이 훈훈하고 따뜻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들의 웃음은 섬뜩하다. 그들의 행복이 나에게 행복으로 다가오지 않은 것은 그들이 보여준 엽기적인 행동 때문이다. 불편한 느낌이 강하다.

마지막 단편 <악의의 얼굴>은 친구 S에게 이지메를 당하는 나의 이야기다. 나의 이야기 속에 S는 공포의 대상이다. 이 공포를 몰아내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이웃집 여자다. 그녀가 말하는 황당한 일의 사실이 밝혀진 후 펼쳐지는 사건들은 인간 심리의 맹점을 그대로 파고든다. 자신이 믿고자 하는 것만 믿는 그 소년을 보면서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조용하면서도 갑자기 S의 웃음이 가슴으로 파고든다. 그 의미가 결코 순수한 것이 아니라 끔찍한 사건을 암시할 때 다시금 우리의 심리를 생각하게 된다.

이 소설집에서 화자의 대상이 되는 인물들의 약자가 모두 S다. 어떤 작품에선 작가를 내세우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혹시 작가의 이름과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어느 작품에선 오츠 이치의 단편들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요즘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다고 하는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다른 작품도 빨리 읽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