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러스트
필립 마이어 지음, 최용준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작품에 대한 화려한 찬사들과 수상 경력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것이 데뷔작임을 생각하면 더욱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런 찬사들을 가슴 한 곳에 담고 읽게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대단한 작품임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엔 연쇄살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고 착각을 했다. 하지만 계속 읽으면서 하나의 살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다양한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을 통해 몰락하고 있는 한 사회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이 그들의 행동과 심리에 완전히 동조를 하지 못한다고 하여도 현실은 그대로 진행되고 있고, 그 끝없어 보이는 삶의 왜곡과 상처들은 계속해서 가슴으로 파고든다.

처음에 아이작이 아버지 돈 4천불을 훔쳐 달아나려고 했을 때 어떤 삶이 앞으로 펼쳐질지 전혀 짐작도 못했다. 떠나기 전 그를 돌봐주고, 그가 가르쳐 무사히 졸업하게 한 학교 풋볼 영웅 포를 만나러 간다. 하지만 이 만남과 잠시 동안의 동행이 이 두 남자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버린다. 그것은 둘 중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단지 잠시 화를 잘 참지 못하는 포의 기질과 차마 자신을 돌봐준 포를 버리지 못한 아이작의 우발적인 행동이 부랑자들의 도발과 결합했기 때문이다. 이 우발적인 살인은 이제 둘만의 문제가 아닌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가족과 그 관계자 모두의 문제로 번진다.

처음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장면을 제외하면 이야기는 여섯 명의 등장인물들 시점으로 전개된다. 그들은 아이작, 그의 누나 리, 아버지 헨리, 포와 그의 어머니 그레이스, 그레이스를 좋아하는 경찰서장 해리스 등이다. 이들 중 역시 중심이 되는 인물은 아이작과 포다. 실제 살인을 한 사람은 아이작이지만 살인 현장과 증인으로 등장한 인물이 범인으로 가리킨 것은 포다. 그것은 포가 이전에 보여준 행동과 전과 덕분이다. 이 오해는 이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다양한 사람들의 심리 묘사를 통해 애증과 절망과 도덕심과 속죄 등과 뒤섞인다. 

뛰어난 지능이 있지만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작에 비해 그의 누나 리는 사람들의 비위를 잘 맞추고 뛰어난 성적으로 예일 대학에 들어가 부유한 남편을 만난다. 이 둘의 현재 모습이 갈리게 된 분기점은 바로 엄마의 자살과 아버지의 산재다. 리는 가족의 어두운 그림자를 뿌리치고 자신의 삶을 찾아간 반면에 아이작은 아버지를 벗어나지 못함으로서 자신의 재능을 썩혀버리고 있다. 그가 가출을 결심한 것은 성장을 향한 조그마한 도전이지만 그 시작부터 문제가 생겼다. 이 문제를 뒤로 하고 그가 도망갔을 때 마주하는 현실들은 그가 얼마나 큰 보호 속에서 살았으며 세상에 대한 무지가 깊은 지 보여준다. 그리고 힘겨운 도망 속에서 자아와 자신을 일치시키고 성장하는 모습은 포의 성장과 같이 맞물려 한 편의 성장소설로도 해석이 가능하게 만든다.

아이작에 비해 포는 머리는 딸리지만 뛰어난 육체와 운동신경이 있다. 풋볼에 재능이 있지만 결국 잘못된 선택을 하면서 새로운 삶의 기회를 놓친다. 자신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음으로써 학창시절 영웅이 어떻게 몰락하는지 보여준다. 대표적인 몰락은 여자들이 그를 대하는 방식이다. 고등학교 시절 그와 자기 위해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던 그녀들이 이제는 그가 애걸을 하여도 잘까 말까 한다. 현실의 높은 벽은 그들이 사회로 나오면서 더욱 높아지고, 한때의 열정은 현실 앞에 차갑게 식는다. 포의 심리를 따라가면 아직도 그 시절의 치기 혹은 영웅심이 남아있지만 현실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작을 위해 그가 다문 입과 감옥에서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 그 속에 내재한 연약함과 그것을 딛고 성장하는 그를 보게 된다.

가족을 버리고 새로운 도시로 옮겨가고 결혼했지만 결코 행복하지 못하고 가족에게 마음이 빼앗긴 리나 역시 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남편 버질에게서 벗어나지 못함으로 자신의 삶을 수렁으로 밀어 넣은 그레이스나 이런 그레이스 때문에 위험한 일을 저지르는 서장 해리스 등도 이 사건을 통해 좀더 자신들의 현재와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삶이 선택의 연속이고,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는 말처럼 이들을 통해 드러나는 현실은 냉혹하고 비정하다. 그들이 잠시 서글픈 희망을 품는 것도 황량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한 조그마한 시도다. 

작가는 “큰 문제들을 개인의 행동 탓으로 돌리는 것, 아메리칸 드림의 추악한 이면이었다.(349쪽)”고 말하면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행동과 사회 현상을 날카롭게 그려낸다. 몰락한 도시에 벌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은 끔찍하다. 경제적인 능력이 사라지고, 미래가 사라진 도시에서 희망마저 사라지고 있다. 이런 마을에서 개인은 너무나도 무력하다. 아이작과 포가 부랑자들을 만난 것도 바로 실업 때문이고, 이들의 부모에게 문제가 생긴 것도 철강 산업의 몰락과 관계있다. 이 몰락이 단지 인건비가 높고 노동조합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일본과 독일이나 스웨덴 같은 복지국가의 성장을 비교하면 얼마나 거짓인지 보여준다. 신자유주의가 내세운 거짓은 연쇄적으로 몰락한 도시들을 통해 새로운 절망과 서글픈 희망과 암울한 미래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소설 속에서 발생한 사건은 바로 이런 현실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