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지구를 돌려라
칼럼 매캔 지음, 박찬원 옮김 / 뿔(웅진)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화려한 수상 경력이 먼저 눈길을 끈다. 대단한 호평으로 가득한 기사들은 읽고 싶은 욕구를 솟구치게 만든다. 그러다 마주한 20세기 최고의 예술적 범죄란 문구는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그 범죄가 예전에 얼핏 들은 뉴욕 무역센터 외줄타기임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첫 문장 “그를 본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11쪽) 부터 시선을 끈다. 곡예사 필리프 프티의 감동 실화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기대된다. 하지만 소설은 이런 기대를 넘어 그 시대, 비슷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으로 이어지면서 전혀 다른 재미와 감동을 전해준다.

동생 코리건 이야기가 나왔을 때 필리프 프티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줄 알았다. 계속 읽는데 프티의 이야기가 없다. 그러면서 코리건의 삶을 설명하는 형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이야기는 아일랜드에서 시작하여 뉴욕으로 이어진다. 프티는 언제 나오지 하는 의문이 생기지만 코리건의 삶 또한 흥미진진하다. 청빈과 이타주의로 가득한 그의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이것이 성인이 된 후부터라면 더 싶게 다가올 텐데 10대 초반부터 그렇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한 그 시간은 사제가 되어 뉴욕에 와서도 변화가 없다. 그리고 그 삶의 끝에서 또 다른 인연과 이야기가 펼쳐진다.

코리건의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 그와 이어지는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한 노부인 클레어 아들의 죽음이 나온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상실과 아픔이 긴 추억과 회상을 거쳐 펼쳐진다. 아들 조슈아는 베트남 전쟁터에서 죽었다. 전투가 벌어지는 곳도 아닌 카페에서 죽은 것이다. 이런 황당하고 안타까운 죽음은 또 다른 부인의 이야기에서도 나온다. 그들이 모여 죽은 아들을 회상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장면을 보면서 그들이 느낀 혼란과 아픔과 죽음에 대한 부정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리고 “더 이상 거울을 들여다볼 수 없는 늙은이들이 젊은이들을 내보내 죽게 하는 것이 전쟁이다. 전쟁은 헛됨을 한데 모으는 일이다.”(177쪽)란 말에선 전쟁의 본질과 그로 인해 상실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의 솔직한 심정을 느끼게 한다.

전혀 관계없을 것 같은 인물들이 나오는 도중에 무역센터에서 줄은 탄 곡예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준비과정과 실행 등이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 중간중간에 삽입된다. 이 놀라운 곡예가 펼쳐지던 순간의 장면과 그 경이로운 장면을 쳐다보는 수많은 사람들 속을 스쳐지나갔거나 그 사실을 몰랐던 사람들의 시간도 같이 흘러간다. 이 시간의 흐름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스쳐지나가고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엮인다. 코리건의 차를 뒤에서 박았던 차 주인의 이야기, 코리건과 함께 탄 창녀 재니스의 엄마 창녀 틸리 이야기, 해킹을 즐기면서 경이로운 줄타기 곡예를 중계하는 아이들, 베트남 전쟁을 찬성했다가 그 전쟁으로 외동아들을 잃은 판사, 사제 코리건을 사랑에 빠트렸던 그의 애인, 베트남 전쟁으로 세 아들을 모두 잃은 흑인 노부인,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그 놀라운 줄타기 곡예와 코리건을 중심으로 연결된다. 이 관련성을 작가는 전혀 별개의 이야기처럼 풀어내지만 이들은 엮이고 꼬이고 관계를 맺으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이 소설은 적지 않은 분량이고, 엄청난 가독성으로 재빨리 읽히는 책도 아니다. 하지만 다양한 환경과 직업과 인종들을 솔직하고 사실적으로 이야기하면서 그 삶에 한발 다가가게 만든다. 그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바로 주변 사람들이다. 그리고 어쩌면 작가가 필리프 프티의 놀랍고 경이로운 줄타기를 이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슬픔과 아픔과 상실을 이겨내고 살아가는 것과 동일선상에 올려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거대한 지구가 돌고 있지만 그 돌고 있는 지구 위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상실을 이겨내고, 계속 나아가는 그들이 한순간의 도전과 이벤트보다 더 위대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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