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사는 너 1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나중길 옮김 / 살림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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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 엘스페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 죽음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금방 알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바뀐 장면에서 에디가 남편에게 불륜을 오해받을 행동을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그것은 2주마다 그녀의 쌍둥이 언니 엘스페스에게 온 편지다. 그녀는 그 편지를 본 후 모두 불태워버렸다. 그러니 오해가 생긴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마지막 편지를 남편에게 보여주고, 오해는 풀린다. 이 오해가 풀린 반면에 언니가 죽으면서 남긴 유산이 그녀의 쌍둥이 딸들에게 전해진다. 묘한 조건이 달린 상태로 말이다.

전작 <시간 여행자의 아내>가 시간여행이란 sf적 요소를 사용하여 사랑을 그려내었다면 이번 소설은 런던의 한 아파트를 배경으로 유령을 등장시켜 사랑을 보여준다. 작가에게 시간여행이나 유령은 사랑을 부각시키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이 도구를 사용하여 인간이 가진 욕망과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하는데 그 설정과 전개가 탁월하다. 엄청나게 무시무시하거나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지지 않지만 유기적인 문장이 책에서 눈을 떼기 힘들게 만든다.

작가는 전작보다 많은 인물을 등장시켰다. 하지만 변함없이 중심인물은 몇 되지 않는다. 유령이 된 엘스페스 이모, 그녀의 연인이자 쌍둥이 자매 중 동생 발렌티나의 사랑을 받게 되는 로버트, 쌍둥이 자매 줄리아와 발렌티나, 강박증에 시달리는 마틴 등이 그들이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쌍둥이 자매와 로버트 중심이지만 유령이 된 엘스페스나 마틴은 아파트을 떠나지 못하는 존재이자 앞의 네 사람을 지켜보면서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존재다. 이 둘은 나중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로버트, 그는 엘스페스의 아홉 살 연하다. 그녀의 죽음으로 삶의 의욕이 사라졌지만 점점 회복하는 중이다. 이때 엘스페스의 유산 상속인으로 나타난 쌍둥이는 추억에 빠져들게 하고, 삶을 뒤흔든다. 그가 쌍둥이를 스토커처럼 쫓아다닌 것은 엘스페스와 너무나도 닮은 외모를 가진 것도 있지만 아직 죽음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충격을 벗어나는 와중에 벌어지는 신비로운 사건과 경험은 다시 한 번 더 그를 뒤흔들어놓는다. 

유령이 된 엘스페스는 자신의 아파트를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을 닮은 쌍둥이에게 애정을 느끼지만 그것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강한 의지와 수많은 노력 끝에 조그마한 물리적인 힘을 가지지만 그 힘이 아직은 구체적이지 못하다. 죽은 후에도 인간의 감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그녀가 옛 연인 로버트를 그리워하고, 쌍둥이들의 삶을 차분히 관찰하는 것은 지박령처럼 그곳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줄리아와 발렌티나는 거울 쌍둥이다. 이 둘은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어준다. 줄리아의 심장이 왼쪽에 있는 반면에 발렌티나는 오른쪽에 있다. 이처럼 이 둘은 장기의 위치마저 반대편이다. 그래서인지 성격도 다르다. 줄리아는 심장 등에 문제가 있는 동생 발렌티나를 돌보려하고, 늘 자신과 함께 행동하길 바란다. 이런 감정과 행동은 새로운 장소와 만남을 통해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이 쌍둥이의 불화를 보면서 왠지 모르게 그녀의 엄마와 이모의 불화를 생각하게 된다. 이것을 이 소설의 끝까지 숨겨두는데 그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놀랍다기보다 어느 정도 예상한 설정이다. 다만 이 사실이 그들을 20년 이상 연락을 끊고 살만큼 대단한 것이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전대 쌍둥이의 불화가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만들어낼 다양한 이벤트나 스릴러를 기대한다면 잘못된 것이다. 그 불화가 어느 정도 현재의 상황에 영향을 미치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엘스페스와 로버트, 쌍둥이 자매 줄리아와 발렌티나, 강박증 환자 마틴 등이 만들어내는 관계와 일상의 삶과 앞으로 뭔가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감이다. 하지만 이런 기대감보다 더 시선을 끌어당기는 것은 그들의 삶이다. 엮이고, 그리워하고, 두려워하고, 미워하고, 사랑하는 이 감정들과 관계들이 빚어내는 이야기가 견실하면서도 유기적인 문장으로 재미있게 흘러간다. 세부적인 묘사와 설명은 처음에 약간 더딘 진행으로 시작하지만 곧 몰입하게 만든다. 초자연적 현상은 신비롭기보다 일상적으로 다가오고, 그 일상이 만들어낼 사건은 긴장감을 조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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