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인 - 미국을 움직이는 아홉 법신(法神)의 이야기
제프리 투빈 지음, 강건우 옮김, 안경환 감수 / 라이프맵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제목만으로 내용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아홉이란 숫자가 먼저 야구를 떠올려주었다. 하지만 곧 미국을 움직인 아홉 법신의 이야기란 부제가 눈에 들어온다. 이것은 다시 미국의 뛰어난 혹은 중요한 아홉 명의 법관 이야기와 역사로 생각이 이어졌다. 반은 맞았다. 아홉 명의 대법관을 다루면서 미국 연방법원의 역사와 이념의 대립을 풀어낸다. 낯설고 먼 나라의 이야기지만 흥미롭고 재미있다.

세계 유일의 강대국 미국의 연방법원을 다룬 이야기가 왜 재미있고 흥미로울까 궁금할 것이다. 남의 나라 대법관 이야기가 말이다. 그리고 법이 얼마나 딱딱하고 재미없는가. 이런 염려도 사실 많았다. 하지만 책 소개 글을 읽고, 책을 차분히 읽으면서 왜 높은 평가를 받았고, 중요한 가치를 가지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연방대법원과 대법관을 다루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대를 가로지르는 두 이념의 대립과 역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현대사의 중요한 쟁점들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논쟁이 되었고, 문제가 되었고, 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사실 한국의 법체계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다. 기초적인 것은 알지만 좀더 깊이 들어가고,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지닌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불과 몇 년 전 관습법으로 서울을 수도로 묶어두면서 국민의 웃음을 산 헌재를 기억하지만 그 판결문의 중요성이나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의 의미를 제대로 몰랐다. 물론 이 한 권의 책을 읽었다고 지금 이런 것을 모두 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정치와 헌법재판소와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법관의 양심이란 것과 정치이념이 지닌 의미 등을 이해하게 되었다. 

처음에 읽으면서 가장 난감했던 것은 바로 낙태 문제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은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지는데 그냥 한국처럼 간단하게 생각했다가는 엄청난 실수를 하게 된다. 또 이 논쟁에서 어디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민주당과 공화당이 나누어지고(완전히는 아니다) 대법관으로 임명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지금까지 소수의 대법관을 제외하면 대부분 공화당 정권시절에 선정되었다. 이런 사실과는 다르게 진보 측에 유리한 재미나고 흥미로운 판결이 상당히 많이 나왔다. 이때마다 말해지는 한 명의 대법관이 있는데 그녀가 바로 샌드라 오코너다. 한때는 유일한 여성 대법관이었고, 판결에서 동수를 이룰 때는 그녀의 한 표가 미국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뒤표지에서도 나왔지만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개입은 많은 문제를 낳았고, 그후 판결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 영향력은 다시 대법관이 바뀌면서 변한다. 바로 이 부분이 책 전체에 흐르는 보수주의자들이 레이건 이후 끊임없이 노력한 부분이다. 진보 측보다 더 끈질기면서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아들 부시 이전에 있었던 대법관 지명의 실패로 인한 아픔을 완전히 씻을 수 있는 선택을 하게 만든다. 이 변화는 원전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대법원 판결이 전례에 따르거나 순수한 의미를 넘어서 정치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대법원이 하는 일의 핵심은 헌법의 현재적인 의미를 결정하는 것”과 “사건의 결과를 지배하는 것은 기능이나 기술이라기보다는 이념이다.”(601쪽)라는 말에서 분명하게 말한다. 대법원의 대법관을 선택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말이다. 이것은 또한 미국의 보수주의 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현대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들이 외치는 세계화와 자유화가 그들 나라의 법 해석에 이르게 되면 얼마나 자국중심으로 흐르는지 보면서 그들이 지닌 논리가 얼마나 자의적이고 허술한지 알 수 있다. 

흥미롭고 재미있지만 단숨에 읽기는 쉽지 않다. 주말 동안 열심히 읽었다. 낯선 이름과 개념들로 헤매기도 하고, 각각의 대법관에 대한 분석과 설명은 낯설음을 덮어주기도 했다. 단순히 진보와 보수 두 잣대로만 판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자신의 양심과 이념과 법 선례에 따르는 대법관들의 모습에선 존경스럽기도 했다. 물론 그 이전에 정치적인 논의와 전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중간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려는 모습에선 최근의 판결에 비추어보면 낭만적인 부분과 진보적인 성향이 강했다. 이 때문에서 보수주의자들이 대법관 선택에서 더 강경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단순히 미국 연방대법원 이야기로 치부하면서 무시하기엔 미국이란 나라가 지닌 무게와 힘이 너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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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쉬튼 2010-05-09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글이참 깔끔하네요 잘읽고갑니다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