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에 대한 정보를 먼저 접한 것은 어느 날 보게 된 영화 프로그램이다. 태국을 무대로 벌어지는 어린이 장기매매를 다루는 일본영화가 텔레비전을 통해 나왔다. 잠시 그 영상과 설명을 보면서 놀랐다. 태국에서 그런 일이 있다니 하고 말이다. 이전에 이시다 이라의 <라스트>란 소설에서 동남아로 소아성애자가 여행을 떠난 것을 읽은 적이 있지만 어린이 장기매매는 처음 봤다. 이 불편한 사실이 영화로 발걸음을 옮기게 하지는 못했지만 원작이 있다는 소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린이 매춘과 매매를 다룬 글들이나 정보를 단편적으로 본 적 있다. 하지만 이 소설처럼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처음이다, 읽는 내내 이 불편한 사실들이 가슴을 짓눌렀다. 사실적이고 노골적인 섹스 장면은 흥분하게 만들기보다 사람이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더 강했다. 그 현실과 사실을 그대로 본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이런 장면들만 가득했다면 아마 읽기를 중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3장부터 이런 아이들을 도와주고, 그들을 구해내려는 NGO가 등장하면서 어떤 기대를 가지게 되었고 끝까지 읽게 만들었다. 이 소설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각자 자신들의 입장이 있다. 태국 북부지방으로 가서 아이들을 사오는 충이나 그에게 아이를 판 부모나 팔린 아이들이나 이들을 막으려는 민간단체의 사람들 모두가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이유나 입장은 뒤로 가면서 점점 현실의 벽 속에 조금씩 무너져 내린다. 그 과정에 벌어지는 살인과 폭력은 몇 번의 여행으로 가지고 있던 태국의 이미지가 산산조각난다. 소설 속에서 밝은 곳에서 바라본 어둠 속은 보이지 않는다는 말 그대로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은 다시 혹시 우리나라도 한때 이런 일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으로 이어졌다. 처음에 아이를 사고팔고 강간하고 담뱃불로 지지는 장면을 보면서 이것이 사실일까 의문도 생겼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이런 사실은 실제 존재하고 있다고 인정하게 된다. 하나의 상품이라면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데 너무 막 대한다. 폭력과 배고픔으로 아이를 장악하는 폭력조직원의 모습은 불과 십수 년 전 한국의 인신매매범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아니 더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무섭다. 차마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장면들이 이어지는데 그 상황 속에서도 그 아이들은 순간의 고통보다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폭력을 더 두려워한다. 난잡하고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행위들을 보면서 인간이 가진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된다. 책 속에서도 말한다. 한 아이를 구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한 아이라도 구하려고 한다. 이런 노력은 현실의 높은 벽과 폭력 앞에 쉽게 무너진다. 조직폭력배들의 위협과 살인 속에서 두려움을 느끼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그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부패의 사슬은 경찰 말단에서 시작하여 최고위직까지 이어져 있다. 어느 한 곳만 바로잡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불과 몇 십만 원이란 아이의 가격은 하나의 사실을 드러내는 상징일 뿐이다. 가난과 기아 속에서 아이를 팔아 텔레비전과 냉장고를 마련했다고 좋아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본능적이라고 말하는 모성애가 과연 선천적인 것인지 아니면 모두가 가진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에이즈에 걸린 딸이 쓰레기장을 벗어나 다시 집으로 온 장면에서 모성보다 더 강한 자기애를 만난다. 전염을 걱정해 우리에 가두어둔 상태에서 연민을 느끼지만 그들에겐 사랑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반면에 자신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다른 아이를 죽이는 길을 선택한 일본 부부의 모습은 또 다른 모습이다. 이것을 보면서 모성애니 부성애니 하는 것이 자신이 살고 난 후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이 불편한 사실들과 잔혹하고 처참한 현실은 밖으로 완전히 드러나지 않지만 고위직들이 알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 그들은 눈을 가리고 그런 일은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일본과 구미에서도 마찬가지다. 작가가 “보려 하지 않는 자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죠.”(233쪽)라고 말한 대목에서 드러난다. 자국에서 강력하게 처벌하는 어린이 매춘과 강간을 다른 나라에서 벌어질 때는 모르쇠가 된다. 여자들이 10살 전후의 남자아이들에게 호르몬제 주사를 놓고 섹스를 하는 장면을 보면서 이것이 단순히 남자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된다. 이것을 아동성애자들이 ‘새로운 사랑’이라는 단어로 포장하고, 잡지에서 광고를 한다는 사실에선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소설이 다루어지고 있는 시간적 배경은 1997년이다. 불과 십수 년 전이다. 지금은 얼마나 개선이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완전히 사라졌다고 믿지는 않는다. 물리적인 힘에서는 더 앞선 조폭들이 돈 앞에 무릎 굽히는 장면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역시 돈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드러난 일본기자의 태국 아이들 매춘과 장기매매에 대한 시선이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본심임을 알 수 있다. 나 자신도 결코 여기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다. 보려고 하지 않는 사실을 본 후 나의 삶이 극적으로 변하지는 않겠지만 조그마한 변화의 시작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