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여행자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요시다 슈이치의 단편집을 읽었다. 역시 그가 보여주는 일상의 단편과 순간들은 건조하면서도 여운을 남긴다. 낯선 공간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일상은 어쩌면 그가 원제이자 마지막에 실은 <캔슬된 거리의 안내>에서 “내가 하는 일은 완전한 현실에서 몇 송이만 따내어 거짓으로 내일에 남기는 작업일지도 모른다.”(206~7쪽) 문장대로 인지 모른다. 그래서 더욱 그 일상들이 낯설 때도 여운을 남기는 것인지 모르겠다.

제목에서 전 세계 10개 도시를 배경으로 쓴 소설로 착각했다. 서울 제외하면 대부분 일본의 도시들이다. 서울을 배경으로 쓴 <영하 5도>는 갑자기 화자가 바뀌어 다시 앞으로 돌아가 바뀐 부분을 읽게 되었다. 이런 갑작스런 전환 속에서도 이어져 내려오는 하나의 주제는 두 사람이 스쳐 지나간 순간과 단상들로 여운을 남긴다. 이런 느낌은 <새벽 2시의 남자> 속에서 비슷한 경험을 또 한 번 한다. 현실이 과거로 변하고, 현실 속에서 추억을 장소를 돌아보는 모녀를 보면서 삶이란 이런 것도 있지, 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첫 단편인 <나날의 봄>에서 말랑말랑한 사랑이야기가 시작되는 연인들을 생각하게 만들었는데 이어지는 단편들은 이런 봄날의 기운을 확 날려버렸다. <태풍, 그 후>에선 다른 두 연령대의 남자들이 경험하는 일상이 왠지 모르게 불안정하고, <젖니>에선 지리멸렬한 삶 속에서 조그마한 변화가 자신도 모르게 힘을 불러온다. <녀석들>에서 남자를 성추행하는 남자에 대처하는 화자의 모습에서 수많은 여자들이 느꼈을 불안과 공포와 분노가 그대로 느껴졌다. 

<오사카 호노카>에선 중년의 미혼남성들의 만남을 통해 변화한 현실의 모습과 사랑을 생각하게 된다. <24 Pieces>는 모두 24개의 문장으로 짧게 구성되어 있다. 색다른 구성과 진행이라 흥미로웠다. <등대>의 동행은 처음엔 누굴까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신선하고 즐겁다. 만약 과거의 나와 만나 함께 길을 가면서 이야기를 한다면 어떨까 상상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 <캔슬된 거리의 안내>에선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게 되는 단서를 얻게 되고, 액자 구성 속 이야기를 통해 현실과 소설 속 현실이 결코 둘이 아님을 깨닫는다. 특히 마지막에 펼쳐지는 두 장면들은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며 여운을 남긴다. 

10개의 이야기 속에 담긴 사람들과 사연은 모두 각각 다르다. 각각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냥 시간이 흘러간다. 비록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 순간들이 나의 삶 속의 순간과 비교가 된다. 비슷한 현실은 돌아보게 되고, 낯선 순간은 그럴 수도 있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봄날의 햇살 같은 가벼운 이야기가 나른한 오후의 햇살 속 낮잠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의 술자리는 숙취의 기운을 살짝 전해준다. 가볍고 날카롭고 무거운 이야기지만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수많은 사연과 삶은 작가의 시선을 거치면서 건조하지만 삶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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