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어트 걸
페터 회 지음, 박산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페터 회의 소설을 읽는다. 뭐 이렇게 말하면 나 자신이 아주 많이 읽은 것 같지만 사실 딱 한 권 읽었다. 바로 그 유명한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다. 이 소설을 읽을 때도 사실 조금은 난감했다. 중역 때문인지 집중을 하는데 조금 방해가 되었고, 낯선 풍경에서 벌어지는 일상과 사건들이 가슴에 꼭 와 닿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으로 읽히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다음 작품을 기다렸다. 이것은 왜일까? 지명도 때문일까? 아니면 낯설음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읽은 때문일까?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이번 소설을 만났다.  

 

전작처럼 이번에도 쉽게 가슴으로 파고들지는 못했다. 1/3 가량 읽으면서 왠지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보다 음악적인 느낌을 더 받았다. 그 후 집중력이 깨어지면서 이 흐름을 다시 찾지 못했는데 상당히 아쉬웠다.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고, 현실과 환상이 조금이 뒤섞이고, 주인공 카스퍼의 능력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올수록 집중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진도는 잘 나갔다. 이야기가 품고 있는 힘도 있지만 그 무엇보다 카스퍼를 통해 펼쳐지는 고전음악과 소리의 세계가 경이롭고 신비로웠기 때문이다. 아마 그가 보여준 책 앞부분 문장에서 느낀 음악적인 느낌이 사라진 것은 바로 이런 경이로움에 둔감해지고, 이야기에 집중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카스퍼. 그는 광대이자 뛰어난 음악가다. 특별한 청각 능력도 가지고 있다. 사실 특별하다는 단어만으로 부족하다. 그는 소리를 통해 사람을 구별하고, 그 사람의 감정이나 속도 들여다보고 느낀다. 그가 감정을 소리를 통해 접근할 때 그 낯설고 신비로운 능력은 감탄을 자아낸다. 그 자신도 이것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확실히 모르겠다고 말할 때조차도 말이다. 또 그가 아이들이나 문제가 있는 사람을 치료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 능력을 보면서 고개를 절로 끄덕인다. 현실에서 이 청각능력은 또 다른 힘을 발휘한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소리를 통해 그 사람의 소재지를 안다. 소리의 울림과 음색을 통해 구분하는 것이다. 미국 드라마 CSI에서 삼각법을 사용하여 소재지를 찾던 것이 생각났다. 물론 카스퍼의 능력이 더 뛰어나다. 


이 소설에서 시대적 공간적 배경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가까운 미래에 지진과 홍수로 코펜하겐을 배경으로 한다. 소설 출간이 2006년인 것이나 카스퍼의 나이가 마흔둘인 것을 생각하면 현재의 시간보다 앞이다. 이 시간은 사실 출간 당시를 배경으로 한다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공간적으로 코펜하겐이나 그 도시가 지진과 홍수로 일부 가라앉았다는 사실은 전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설 속 핵심 내용이 코벤하겐의 침몰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밝혀지는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은 카스퍼의 능력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놀랍고 신기하다. 


소리에 대한 탁월한 능력은 세계적인 인기를 끌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일상은 수많은 소송과 세금 문제가 섞여있다. 세계적 인기는 물질적 풍요를 가져오고, 그 풍요는 결국 그의 인간적 성장과 발전을 방해한다. 이런 현실에서 스페인은 그를 고소하고, 곧 그곳으로 끌려갈지도 모른다. 최소 5년은 감옥에 살아야 한다. 이때 한 소녀가 나타난다. 클라라마리아다. 이 소녀는 그를 끌어당긴다. 이 끌림은 그를 방황하고 조사하게 만든다. 결국 다다른 수녀원에서 만나게 되는 놀라운 장면은 그가 지닌 능력을 압도할 정도다. 그리고 현실은 그가 이 소녀를 찾게 만들고, 이 소녀를 둘러싸고 있는 비밀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가까운 미래와 카스퍼의 신비한 능력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면 속도감 있게 읽히고 재미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문장과 소리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덕분에 좀더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고전음악과 소리에 대한 풍부한 설명과 해설은 흥미를 자아내는 동시에 나를 압도한다. 머릿속에서 그 음악들을 재현해보려 하지만 능력이 부족하다. 대신 바흐에 대한 관심은 다시 높아졌다. 이미 다른 책에서 그에게 빠진 글을 읽고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바흐를 좋아하는 것이 완벽한 대위법으로 펼쳐지는 음악 때문이 아닐까 추측한다. 나도 한 번 느껴보고 싶은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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