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심을 그대로 드러내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삶은 의무와 책임으로 가득하다. 한때 즐거움이 어느 순간은 의무도 바뀌고, 삶은 점점 무거워져 간다. 나의 기준에서 사물과 사람을 이해하기 때문에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진다. 묻지마 범죄가 늘어나고, 자신을 짓누르는 삶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진다. 의무와 책임을 벗어던지고 나로 살아가고 싶은 본심이 가득하지만 사회 속에서 그것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본심을 만약에 그대로 드러내고 행동으로 옮긴다면 어떨까? 이 소설 속 주인공 야나세가 가진 능력은 바로 이런 본심을 알아채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저주라고 부른다. 파장의 공명을 통해 다른 사람의 본심을 읽는 능력을 가진 야나세지만 비극적인 가족사가 있다. 그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고 자살한 것이다. 그의 아버지도 야나세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그 집안의 유전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알아서 좋을 것이 없는 것도 많다. 아니 정확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지도 인정하고 싶지도 않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게 만들고 본심을 행동으로 옮기게 만든다면 아마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할 것이다. 저주로 불리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그가 한 명의 친구도 가지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야나세는 힘들게 의대에 들어갔지만 자신이 가진 저주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하자 자퇴한다. 그리고 대안학원에서 아르바이트 선생을 한다. 그 어떤 학교나 학원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아이들이 이곳에 온다. 수업시간은 있지만 수업은 없고 모두가 그냥 앉아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다가 갈 뿐이다. 이 학원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가 다녔던 의대 가사이 교수가 그를 찾는다. 자살 미수로 입원한 환자를 죽인 그가 말이다. 채 한 학기도 제대로 다니지 않은 그를 기억한 것은 그가 물은 질문 때문이다. 그리고 한 소녀를 지켜달라고 부탁한다. 그가 죽인 여자의 딸 사쿠라다. 기본 줄거리는 가사이 교수가 죽인 여자의 딸을 지키는 것이지만 그 속엔 야나세의 과거와 현재의 삶이 녹아있다. 기억을 교묘하게 자신이 편리한대로 왜곡한 그나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는 아들을 눈치채고도 신고하지 못하는 엄마나 직장을 잃고 가장의 허울을 유지하고자 하는 아버지나 자신의 딸이 아님을 알지만 겉으로 드러난 부정을 위해 노력하는 척하는 아버지 등이 교차하면서 연결된다. 그가 저주를 내려 그들을 한 명씩 해방시킬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불편하다. 자신들과 비슷하지 않는 그를 손가락질하고 질타한다. 대부분이 감정을 속이고 진심을 왜곡하고 사회 속 일원으로 맴돌기 때문이다. <미싱>에서도 참 글을 잘 쓴다 생각했지만 장편에서도 그 능력은 변함없다. 가볍고 빠르게 읽히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와 삶은 결코 가볍지 않다. 미세한 감정의 흐름을 포착하고, 너무 솔직하게 감정을 까발린다. 불편함을 넘어 충격적일 때도 있다. 아마 텐도 아라타의 <가족 사냥>을 먼저 읽지 않았다면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데올로기와 사회가 틀 속에 집어넣으려고 하는데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작가는 이런 사람들을 내세워서 현대의 가족이나 삶을 그려내었다. 일상적이지 않고 가장된 부분도 많지만 결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일본의 사회 문제가 점점 한국에서도 현실화되고 있는 지금 생각해 볼 것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