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의 살림집 - 근대 이후 서민들의 살림집 이야기
노익상 / 청어람미디어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우리가 흔히 시간 내어 찾아가서 보는 집은 문화유산이거나 화려한 집들이다. 일반 서민들 입장에서 보면 그런 집에 산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집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극히 소수의 사람들뿐이다. 그럼 대부분의 서민들은 어디에 살았을까? 작가는 이런 자료가 없거나 부족함을 알게 되었고, 긴 시간을 들여 이렇게 가난한 우리 서민들의 살림집을 글과 사진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속에서 만나는 집 중 몇몇은 이름조차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집들이다.

모두 열한 집이 나온다. 그 중에서 분교와 간이역을 제외하면 모두 아홉 곳이다. 외주물집, 외딴집, 독가촌, 차부집, 여인숙, 막살이집, 미관주택, 시민아파트, 문화주택 등이다. 처음에 외주물집을 보고 읽으면서부터 낯설다. 분명히 어린 시절 주변에서 많이 본 집들인데 이렇게 불린다는 것을 안 것은 처음이다. 그리고 작가가 긴 세월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 그들이 살았고 살아가는 집과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 속에서 작가를 통해 보는 삶은 깊은 감정이입을 배제하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위치에서 본 내용들이다. 그렇다고 그 세부적인 상황이나 현실이 그냥 묻혀버린 것은 아니다.

한국 곳곳을 다니면서 만난 사람들과 집들은 한 장의 사진으로 몇 장의 글로 다시 살아났다. 하지만 그 집들과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과 시대의 요청에 의해 점점 없어지거나 사라졌다. 근대 이후 이런 집들이 왜,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었는지를 시대 속에서 보게 되면 가슴이 아린다. 단순히 보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대의 요구와 농경문화의 특징 속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는 모습은 낯선 풍경이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놀이와 문화가 생전 처음 듣고 본 것이란 독가촌의 경험을 듣는 순간 어리둥절함과 굳건하게 뿌리내린 상식의 벽이 무너진다. 

정겹고 그리운 풍경으로 이제 변한 분교와 간이역의 다른 역할을 알게 될 때는 시대가 만들어낸 아픔이 느껴지고, 분단 조국의 현실을 깨닫게 된다. 군사독재 속에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미관주택 이야기 속에선 평양의 거짓 건물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도시의 흉물로 변한 시민아파트의 역사는 졸속 행정이 만들어낸 산물임을 다시금 인식하게 되고, 문화주택이 어떻게 개량 한옥과 다른가 하는 의문이 생길 때는 나의 개량한옥에 대한 이유 없는 선호가 살짝 부끄러워진다. 

집은 사람이 사는 곳이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집만 보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을 잊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저런 곳에서 살 수 있지? 하는 의문이 생기지만 실제 그 속에선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반대로 저런 곳에 살면 걱정이 없겠다고 하지만 그들도 고민하고 걱정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현대화 물결 속에서 개인의 생활 보장이 점점 중요해지는 요즘 외주물집의 노출된 환경은 옛날 이웃 사촌간의 관계와는 분명히 다르다. 외딴집의 외로움은 사진 속의 개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작가가 차부집에서 먹은 라면의 추억은 입가에 침이 고이고, 옛날 큰아버지 집을 생각나게 한다. 막살이집은 어릴 때 길 하나를 두고 살던 아이들이 눈가에 아른거리고, 철없던 그 시절이 그리움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든다.

사진이 많은 책이라 단숨에 읽으려고 했다. 실제로 하루 만에 읽었다. 하지만 읽으면서 점점 무거워지는 마음과 되살아나는 추억과 기억들이 나를 즐겁게 만들기보다 괴롭혔다. 한 장의 사진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감탄하다가도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사연으로 잊고 있던 감정들이 되살아났다. 이제는 볼 수 없는 풍경과 집들은 그리움을 불러오고, 무표정하거나 환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의 모습에선 추억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집의 변화를 풀어내고, 그 역기능뿐만 아니라 장점도 같이 다루는 작가의 시각에선 한 수 이상 배우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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