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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사람 1 ㅣ 이타카
이수영 지음, Song, won seok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무협 판타지를 읽었다. 책이 잘 읽히지 않기에 선택했다. 역시 예상한대로 속도감이 좋다. 예전부터 이름을 듣고, 몇 권의 책을 가지고 있던 작가의 작품이다. 하지만 왠지 손이 쉽게 나가지 않았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이 긴 장편인대 반해 이번 작품은 단 두 권인 것이 부담 없었다. 그리고 작가가 풀어내는 죽음에 대한 세계관은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만든다.
싸우는 사람. 제목 그대로 주인공은 싸우는 사람이다. 노예 검투사로 괴물이나 다른 노예와 싸워야 했고, 탈출해서는 자신이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기 위해 싸워야 한다. 그리고 죽음 직전에 벌어진 일 때문에 오쿠거라는 맹수와 한 몸이 된다. 그의 오른쪽 반은 인간이고 나머지 반은 오쿠거다. 왼쪽 어깨에 오쿠거의 머리가 있고, 그의 영향력이 떨어지면 오쿠거가 활동을 펼친다. 이런 부조화는 자신을 찾고자 하는 그의 싸움 속에서 또 다른 싸움이자 조화와 공존을 위한 싸움이기도 하다.
무협 판타지답게 전투와 마법이 펼쳐진다. 괴물이 등장하고, 좀비가 움직이고, 신관과 기사들이 활약을 펼친다. 다양한 신들이 공존하고, 그 신을 섬기는 신관들이 사람 사는 세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재미난 것은 죽음의 신이 주장하는 논리다. 죽음 앞에 모두가 평등하기에 귀족과 평민에 대한 구분이 특별하지 않다. 다른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이 이를 구분하고, 오쿠거와 한몸이 된 그를 경시하는 것에 비해 데스가움의 사제인 키나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데스가움의 사제는 비정상적인 죽음으로 정상으로 돌려놓을 뿐이지 사람을 결코 죽일 수 없다. 비록 산 자들에게 심적인 위압감을 줄 수 있지만 물리적인 폭력 앞에선 절대 살생을 할 수 없다. 이런 장치를 작가는 교묘하게 엮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제목처럼 싸우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 한 편 그의 과거를 파헤친다. 추리나 논리나 추적을 통해서가 아니라 영혼의 이야기를 통해서 알아내는 것이 조금 특이하다. 그것도 단숨에 드러내지 않고, 그 영혼의 정화 정도에 따라 조금씩 밝혀진다. 이름 속에 숨겨진 비밀과 과거의 아픔은 뒤로 가면서 더욱 커지는데 이것은 이 소설이 주는 재미 중 하나다. 반전처럼 펼쳐지는 과거사 기록은 마약으로 망가진 그의 뇌 속 기억을 알지 못하는 것이 다행임을 알려준다. 죽음의 신의 사제가 된 그에게 과거는 어쩌면 큰 의미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많은 신 중에서 죽음의 신을 섬기는 사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친 것은 의미가 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죽음 앞에 모두가 평등하고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도 있지만 죽음을 긍정하는 순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긍정하고 제대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이를 역행하려고 할 때 문제가 발생하고, 데스가움의 사제를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이것은 우리가 흔히 겉만 보고 속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죽음의 사제가 자신들에게 죽음을 가져다 줄 것이란 착각은 바로 이런 잘못된 인식과 죽음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무협 판타지를 즐겨 읽는 사람이라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허황되고 어이없다고 생각한다면 책을 덮는 것이 좋다. 하지만 그런 사람일지라도 작가가 찰나 찰나 줄어드는 목숨 속에서 인간이 눈앞에 단맛에 모든 것을 잊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한 부분과 죽음에 대한 이해는 한 번쯤 음미할 필요가 있다. 그 중독성이 너무 강해서 탈이지만 다시 긴 무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