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은 언제나 힘들게 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찾아 읽게 되는 것은 왜일까? 그 이유 중 하나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그 난해함 속에서 살짝 발견하는 그의 세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모두 읽지는 않는다. 한 번 읽다가 포기하거나 그냥 사두기만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데 그는 자꾸 눈길이 가게 만든다. 일반 작가의 작품을 읽는 시간의 두 배 이상 들여서 말이다. 작가의 등단 50주년 기념 소설이다. 이런 사실은 나에게 큰 의미가 없다. 하나의 사실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간단한 정보를 알고 책을 펼치면 그의 소설에서 늘 만나게 되는 아들의 모습이 보인다. 반갑다. 그와 함께 휘는 봉을 짚고 걷는데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가 바로 대학동기이자 30년 전 함께 작업을 했던 고모리다. 우연처럼 보이는 이 만남 뒤에 작가는 30년 전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한 여자의 삶과 소설과 영화가 엮이기 시작한다. 30년 전 고모리가 가지고 온 프로젝트는 미하엘 콜하스 계획이다. 클라이스트 작 <미하엘 콜하스의 운명>을 텍스트 삼아 영화로 만드는 것이다. 전 세계적인 프로젝트인데 원래는 한국에서 김지하가 시나리오를 쓰고, 한국 영화감독이 만들려고 한 모양이다. 그런데 김지하가 수감되면서 일본에서 이 프로젝트가 이어진다. 소설의 내용은 부당한 봉건 영주에 대항해 싸운 콜하스의 투쟁과 최후를 그린 것이다. 시대정신과 묘하게 일치되는 영화 기획이다. 고모리는 이 계획의 기획자이자 한 명의 시나리오 작가와 배우를 등장시키는 인물이기도 하다. 시나리오 작가는 당연히 오에 겐자부로다. 배우는 어릴 때 미군에 의해 거두어진 사쿠라 씨다. 작가는 여기서 이야기의 방향을 살짝 틀어버린다. 원래는 콜하스 계획을 중심으로 이야기로 열었지만 곧 사쿠라 씨의 것으로 넘어간다. 물론 이 과정이 휙 하고 바뀌지는 않는다. 시나리오 작업 과정에서 일본화 작업을 생각하고, 그 도중에 작가의 어머니가 공연했던 <메이스케 어머니 출진>으로 흐름이 바뀐다. 그러면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으로, 무대도 배경도 바뀐다. 물론 이런 변경된 기획을 고모리가 쉽게 허락할 리가 없다. 하지만 사쿠라 씨가 중심으로 나서게 되면서 가능성이 열린다. 미하엘 콜하스 계획에서 메이스케 어머니로 넘어가는 와중에 변함없이 등장하는 것이 있다. 바로 포의 시에 나오는 애버벨 리다. 작가는 예전에 포의 시에 빠졌었고, 포의 시에서 비롯한 <에너벨 리 영화>는 그와 사쿠라 등에게 강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이 영화와 관련하여 사쿠라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녀에게 이 기억은 하나의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었다. 그런데 겐자부로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영상 이미지가 그녀의 것과 다르고, 과거의 상처를 씻어내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것은 무삭제판이 아니다. 숨겨진 진실이 밝혀지고, 살짝 덮어졌던 상처는 더욱 벌어지고, 그들의 관계는 산산조각 난다. 30년 전 일을 기록하면서 현실로 다시 돌아온다. 그때 미완성으로 끝난 것을 다시 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번엔 아예 <메이스케 어머니>가 중심이다. 이 작업은 벌어진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자 끝내지 못한 작업의 완성이다. 어쩌면 이 소설은 “사쿠라 씨의 탄식과 분노의 ‘넋두리’는 고조되고, 추임새에 화답하는 사람들은 파도를 이루며 흔들린다.”(227쪽)는 말에 모든 것이 담겨 있는지 모른다. 작가의 과거 회상과 현재가 시 속의 애너벨 리와 영화 속 애너벨 리로 겹쳐지고 분리된다. 가독성이 뛰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읽고 난 후 곱씹을 부분이 역시 많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