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 부는 사나이 - 제15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기홍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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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에 서양 동화 속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진 이야기가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아닌가 생각한다. 전설을 통해 만들어진 동화 속 이야기를 판타지로 해석한 소설도 있고, 현대적 의미로 새롭게 쓴 글도 있다. 왜 이 이야기가 이렇게 작가들의 관심을 끌까 의문을 가진 적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 또 한 작가가 피리 부는 사나이를 들고 나왔다. 그는 환상과 현실을 교차시키면서 한 대학생의 사랑과 성장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처음 소개 글에서 설정을 보았을 때부터 시선을 끌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실행될 것을 두려워한 한 중학생이 있다. 그 두려움은 실재적이었다. 충동에 휩싸여 누구나 위험하다고 느낄 수 있는 일을 거리낌 없이 저지른다. 이런 그가 밀레니엄을 맞이했을 때 허탈함은 대단했을 것이다. 자신을 충동으로 내몰았던 심장의 소리는 들리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도 시들해졌다. 덕분에 고등학교 시절은 조용하게 흘러갔다. 이때부터 그는 귀마개를 가지고 다녔다. 하루 종일 귀마개를 한 적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머니 속의 귀마개를 만졌을 뿐인데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 현상이 생긴다. 소리 없는 기억이 그를 채우기 시작한다. 

소리 없는 기억을 가진 그에게 피리 부는 사나이 이야기는 묘하게 다가온다. 첫 사랑인 수연의 이야기 속에서 나타난다. 처음엔 그냥 수연의 기이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이야기는 점점 커진다. 처음엔 풋풋한 새내기 대학생활을 다루고, 소문의 무서움과 무거움을 나타낸다. 술에 취해 함께 잔(정말 잠만 잔) 정현과의 일은 같은 학생들의 질투와 오해로 뒤틀린 학창생활을 하게 만든다. 이 때문인지 그는 같은 하숙생이자 동급생인 우진과 연상의 여자이자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수연과의 관계에 더 집착한다. 이 둘과의 관계는 학창시절 어쩌면 가장 찬란하고 멋진 경험일 수 있다. 다른 사건들만 없다면 말이다.

삶 속에 자주 발생하는 엇갈린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는 동시에 현실 속에서 수없이 발생하는 테러와 실종이 그 사이사이를 채운다. 처음 그 시절에 발생했던 수많은 실종들을 단순히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기 위한 소품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사실들을 작가는 뒤로 가면서 하나의 전설과 연결시키면서 새로운 설정으로 만든다. 그 전설이 바로 피리 부는 사나이다. 그의 피리 소리를 들었던 사람들은 그 신묘한 연주에 매혹되고 자신도 모르는 끌림에 빠진다. 이 끌림은 실종과 테러라는 현실로 이어진다. 왜 이런 테러가 발생하게 되었는지 알려주는데 그 답이 해석자에 따라 갈릴 수 있다. 전설을 현실 속 부조리와 부패 속에 부활시킨 것이다. 

흡입력이 좋은 소설이다. 나의 이야기 속에서 만나게 되는 친구들과 사람들은 흥미롭고 풋풋하고 그립다. 평범하지 않은 그들이지만 젊음 속에 뭉치고, 아파하고, 그리워하고, 성장한다. 중반 이후 갑작스런 비약처럼 보이는 피리 부는 사나이와 테러의 연관성은 당혹스럽지만 자연스럽게 넘어가진다. 처음에 소리를 잃은 그와 매혹적인 피리 소리가 이어지고 겹쳐지면서 현실의 상황들이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책 마지막에 와서 그에게 일어나는 일상의 지겨운 반복은 삶의 무거움과 그리움을 덜어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가 언젠가 만나게 될 신세계는 어쩌면 성장통 끝에 그 앞에 펼쳐질 현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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