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의 아버지
카렐 판 론 지음, 김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처음 제목을 보고 생각한 것은 아들의 눈에 비친 아버지인 나의 모습이었다. 아들의 키우면서 벌어지는 나의 모습을 재미있게 혹은 가슴 아프게 그려낸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책 소개 글을 읽으면서 제목 그대로의 의미란 것을 알았다. 현재의 내가 아닌 실제 생물학적 아버지 말이다. 그것도 아이를 하나 더 낳기 위해 한 정자 검사에서 알게 되었다니 얼마나 운명의 장난인가? 거기에 생모는 예전에 죽었고, 홀로 혹은 애인과 아이를 지금까지 십 년 이상 키워온 상태다. 자신과 아이를 위해 생물학적 아버지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과거로부터 당연하다고 믿고 있던 것들이 산산조각 났다. 그 조각들 사이에서 그가 알고 싶은 것은 그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누군가 하는 것이다. 모니카의 전 애인이었던 로베르트를 가장 먼저 의심한다. 그가 이 둘 사이에 끼어들어 사랑을 쟁취했기에 더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아니다. 다음으로 주치의였을까? 역시 아니다. 이런 의문을 가지고 있던 중 전 직장 동료였던 니코를 의심한다. 그의 아이들 중 한 명 이름이 자기 아이처럼 ‘보’이기에 의심은 확신으로 변한다. 그렇지만 그 역시도 아니다. 

이런 내 아들의 아버지 찾기가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룬다면 모니카와의 과거는 또 다른 한 축이 된다. 현실이 아버지 찾기로 이어지고, 이 과정에 과거는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과거는 추억으로 변하고, 그 추억은 잠시 그리움으로 되살아난다. 작가는 이런 과정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진행하지 않고, 그 경계를 세심하게 살피지 않으면 시간을 혼돈하게끔 만들어놓았다. 이것이 작품을 위한 의도적인 연출인지 아니면 원래 그의 방식인지는 모르지만 화자 아르민을 둘러싸고 일어난 상황을 표현하는데 아주 적절한 방식인 것은 분명하다.

흔히 우리는 한 아이가 태어나면 아빠와 닮은꼴을 찾기 바쁘다. 조금이라도 비슷한 구석이 있으면 닮았다고 외치고, 아빠와 엄마를 안도시킨다. 이것은 엄마는 분명하지만 아빠는 유전자 검사를 하기 전까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가부장적 사회가 만들어진 이후 여자의 처녀성을 더 없이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불안이 반영된 것이다. 책 속에서도 다루어지지만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수많은 남편들이 생물학적으로 자기 아이가 아닌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한다. 이런 연구 결과는 처음 읽었을 때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인다.

아르민이 보가 자기 아이라고 확신하게 된 것에는 자신과 닮은 점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 위에 모니카와의 추억과 사랑은 조금도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게 만들었다. 이런 확신 속에 펼쳐지는 이 두 사람을 둘러싼 추억과 섹스들은 보수적인 기준에서 보면 문란하다고 할 정도다. 결혼 정절이 순간 무너지고, 불륜은 곳곳에서 범람한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자신의 애인과 배우자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관계를 깨는 것이다. 그러니 믿는다. 그리고 닮은꼴을 찾는다. 이 불안과 모순 속에 현대인의 삶이 있다. 

소설은 읽는 독자에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아르민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만나게 되는 사실들을 인식하게 만들고, 의심의 그림자를 키운다. 혹시 검사의 실수는 아닐까? 추측해보지만 아니다. 등장인물들과의 관계들과 순간의 실수들을 생각하면서 누가 진짜 아버지일까? 고민하게 만든다. 이 여정은 빠르고 흥미롭게 진행된다. 그리고 밝혀지는 사실은 놀랍지만 앞에 단서를 흘려놓은 것이다. 단지 우리의 선입견과 편견이 눈을 가렸을 뿐이다. 그리고 아르민이 그 사실을 알고 집착했던 몇 가지 질문은 놀라운 사실과 망가진 자존심의 순간적인 폭발이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선 그 순간 어쩌면 가장 솔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몇 개월의 시간을 둔 후 일상으로 복귀하는 모습을 통해 그 가족이 지닌 힘을 보여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