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러블 꿈꾸는 달팽이
게리 D. 슈미트 지음, 김영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화려한 수상경력은 언제나 눈길을 끈다. 특히 처음 만나는 작가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사실 이 책 앞부분은 지루했고 너무 뻔할 것 같은 결말과 피곤한 몸 때문에 진도는 더뎠고 집중력도 떨어졌다. 하나의 사고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일들이 정해진 궤도를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으니 더욱 그랬다. 책 중간 중간 다른 화자를 집어넣어 결말을 암시하고, 숨겨진 비밀을 조금씩 알려줘 기대감은 더 낮아졌다. 하지만 그런 지루함과 뻔함은 거기까지였다. 그가 중간 중간 심어놓은 설정들이 하나씩 꽃을 피우고, 비밀이 드러나고, 진실을 알게 되고, 불행은 인정하는 순간 왜 이 작가의 작품이 수많은 상을 받았는지 알게 된다.

헨리의 형 프랭클린은 바닷가 마을 블리스베리에서 스타 운동선수다. 뛰어난 럭비 선수인데 그가 어느 날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가 캄보디아 난민 출신인 차이의 트럭에 치인다. 헨리에겐 그는 영웅이다. 그리고 함께 카타딘 산을 오르기로 약속한 상태다. 이 집안은 불행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집을 지으면 불행이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불행한 일이 생긴 것이다. 부모에게는 자랑스러운 자식을, 동생들은 사랑하고 존경하던 오빠와 형을 잃은 것이다. 이 비극이 집안에서 고요하게 폭풍전야 같은 움직임을 보인다면 이웃집이나 마을사람들은 괜히 나서 감정을 상하게 만들고 호기심으로 머리를 들이민다. 이런 불편함은 소년과 가족들 모두에게 큰 상처를 남긴다.

이 사고를 둘러싸고 펼쳐진 법원의 공방전은 외형적으로 가해자에겐 다행이고, 피해자 가족에겐 더 큰 아픔을 남긴다. 특히 헨리에겐 더욱 그렇다. 그는 자기 형을 차로 친 캄보디아 차이가 그 정도 형벌만 받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마을사람들도 이 판결을 둘러싸고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한다. 이 사고 이전에도 있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감정들이 이 사고를 계기로 밖으로 표출된 것이다. 이 판결에 대해 가장 정확하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바라다본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헨리의 엄마다. 아마 이런 사실 때문에 프랭클린의 죽음을 마주하고 그렇게 서글프게 울었는지도 모른다.

헨리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때 바다로 몰고 간 카누로 만난 한 마리의 개가 있다. 이름은 검둥개다. 처음 이 개가 집으로 들어와서 펼치는 난장판을 보고 곧 버려지겠구나 생각했다. 상실감 때문인지 아니면 관대함과 개의 애교 때문인지 집에서 키우게 된다. 검둥개는 외로움과 분노의 감정 속에서 방황하는 헨리의 가장 친한 벗이 되어 곁을 늘 지켜준다. 하지만 이 또한 앞부분에 복선을 깔아놓은 것이다. 조금만 신경 쓰면 쉽게 알 수 있다.

헨리와 마을 사람들에게 영웅이었던 프랭클린의 과거는 결코 바르지 않다. 그와 동료들이 차이에게 가한 폭력과 모독은 정도가 심했다. 이것을 알고 있는 교장의 대처는 자신의 속내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그래서인지 헨리의 아버지가 프랭클린의 미래를 생각하고 걱정하고 고민하는 장면이 가슴으로 파고든다. 숨겨진 아들의 비리가 드러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시는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기 때문일까? 부모 모두가 대단하다.

작가는 진도가 나가는 중간에 복선을 하나씩 심어놓는다. 쉽게 발견되는 부분도 있고, 예측가능한 부분도 있다. 대부분 작가들이 이런 장치를 깔아만 놓고 제대로 활용을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가는 다르다. 소설이 탄력을 받고 진정한 힘을 발휘하는 대목에 이르면 이 복선들과 관계들로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앞에서 느낀 약간의 지루함과 진부함도 그냥 날아가버린다. 만약 앞부분에 좀더 속도감이 있다면 정말 정신없이 읽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가족, 죽음, 인종차별, 독재, 과거, 현재를 아우르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힘이 정말 대단하다. 되새기면 더 많은 것들이 생각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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