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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 ㅣ 뫼비우스 서재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의 첫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2008년 영국추리작가협회 이언 플레밍 스틸 대거 상을 받았다. 일본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해외 부분도 1위다. 이런 화려한 수상경력 중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있다. 맨 부커 상 후보에 선정된 것이다. 분명하게 이 소설을 스릴러로 알고 있는데 후보에 올라간 것이다. 약간 의외였다. 하지만 모두 읽고 난 지금 이 선정에 고개를 끄덕인다. 한 편의 스릴러를 만들기 위해 작가가 촘촘하게 만들어낸 소련의 모습이 너무 사실적이고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1933년 우크라이나 체르보이 마을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이 시기는 실제 우크라이나가 엄청난 기근에 시달리던 때다. 초근목피로 삶을 이어가고 있던 중 한 여자가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를 밖으로 내몬다. 너무 사랑하지만 자신의 배고픔 때문에 고양이를 잡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선택으로 고양이를 내좇는다. 그런데 이 모습을 한 소년 파벨이 본다. 엄마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말하고 고양이를 잡으러 간다. 동생 안드레이와 함께 고양이를 잡지만 그는 다른 어른에게 잡힌다. 동생이 형이 사라진 것을 두려워하며 엄마를 찾아간다. 형은 어디에도 없다. 배고픈 또 다른 사람에게 잡힌 모양이다. 이렇게 과거 속으로 빠져 들어간 후 현실로 나온다.
1953년 현실의 소비에트 연방은 참혹하다. 독재자 스탈린의 말은 곧 하늘이고, 반항은 죽음이다. 위대한 사회주의 국가임을 서방에 알리기 위해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찬 통계가 판친다. 당연히 살인사건은 존재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던 어느 날 눈싸움을 하던 형제 중 동생이 사라진 후 기찻길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이 아이는 주인공 레오의 부하 아들이다. 아버지는 살인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은연중에 드러난 레오의 위협에 아들의 죽음은 사고로 바뀐다. 이 사건이 묻히는 순간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다. 스파이 협의로 감시 중이던 수의사가 도망친 것이다.
전쟁 영웅이었던 레오가 조금 방심한 그때 벌어진 일이다. 수의사 주변을 수사하던 중 단서 하나를 발견한다. 그를 몰아내고 그의 자리를 탐내던 부하 바실리는 다른 곳을 지목한다. 엇갈린다. 레오는 확신을 가지고 수의사를 뒤쫓고, 그를 잡는다. 수의사를 숨겨준 전쟁 동료는 바실리에게 즉결 처분된다. 섬뜩한 현실이다. 다행히 두 딸은 레오의 저지로 살아남는다. 수의사는 끌려가 고문당하고 약에 취해 고객들의 이름을 말한다. 이때 레오는 그가 무죄임을 안다. 하지만 현실은 국가 권력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죄가 없지만 잘못은 있을 수 없다. 이 사건을 통해 살벌하고 공포에 떨던 스탈린 시절의 삶이 피부로 느껴진다.
이 자백 중 레오의 아내 라이사가 나온다. 위에서 이것을 조사하라고 한다. 그는 고민하다 아내의 무죄를 주장한다. 실수다. 평소 같으면 시베리아로 유배당할 것이지만 그때쯤 스탈린이 죽었다. 이 때문에 그는 다른 지역 민병대로 좌천된다.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이 일을 통해 자신이 알고 있던 가족의 실체가 드러난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한 아내가 권력의 두려움 때문에 결혼했고, 이제 그 사실에 그는 폭발한다. 이런 가족 해체 속에서 그와 아내는 숲 속에서 한 구의 시체를 발견한다. 이 시체의 모습이 부하의 아들이 죽은 모습이나 그 마을에 있었던 살인과 비슷하다. 이때 깨닫는다.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있음을 말이다. 물론 현실에서 이런 연쇄살인사건이 인정될 리가 없다. 이때부터 이 살인사건을 파헤치기 위한 그와 아내의 협력과 노력이 펼쳐진다.
소련의 과거를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유신시절이 생각난다. 안기부가 언제 구둣발로 집을 짓밟고 사람을 잡아갈 줄 몰랐다는 불안과 공포 시절 말이다. 독재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펼치는 폭력과 압제는 불안과 공포를 먹고 자라는 모양이다. 그래도 한국이 민주주의의 탈을 쓴 상태에서 살인과 고문이 자행되면서 어느 정도의 한계가 있은 반면에 철의 장막 속에선 한계조차 없다. 의심은 확정이고, 확정은 곧 죽음이다. 즉결처분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일어나고, 감시의 눈길은 아버지와 아들, 형제 사이에도 없다. 조그마한 농담 한 마디로도 충분히 죽을 수 있다.
드러난 현실은 만들어진 이미지로 포장되고, 그 밑에 숨겨진 현실은 불안과 공포로 가득하다. 너무나도 분명한 연쇄살인사건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이것을 조사한다는 것은 곧 권력에 대한 도전이다. 이 말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란 의미다. 소설 후반부는 살인자를 찾으려는 레오의 노력과 독재정치가 깨어지는 틈새를 보여준다. 그리고 레오가 생각한 인민의 이미지가 조금씩 바뀌고, 멀어졌던 아내와의 관계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스릴러 같이 악당과 경찰이 만들어내는 쫓고 쫓기는 대결이 이 작품의 매력은 아니다. 공포에 짓눌린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현실과 공포와 불안이 살인을 조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력이다. 한 인물이 변해가고, 깨닫고, 인정하는 그 과정이 매력이다. 나의 과장된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주인공 이름이 레오인 것이 영화 <매트릭스> 속 레오와 같이 현실을 깨닫고 싸우는 존재의 오마쥬인지도 모르겠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영화로 만들고 있다니 어떨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