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의 인연 - 최인호 에세이
최인호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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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재작년에 읽은 <산중일기>가 상당히 재미있었다. 그 때문에 이번 에세이도 눈길이 갔다. 처음 책을 받고 대충 넘겨보면서 마주한 사진들은 따스하고 그리움을 불러일으켰다. 거기에 좋은 종이까지 곁들여 있다. 이런 만족스런 감각들을 가지고 책을 펼친다. 목차를 가볍게 훑고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낯익은 이름들도 보인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그의 문학 반세기를 만든 추억과 인연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처음 읽으면서 속도가 빨랐다. 가벼운 이야기에 많은 사진들이 그렇게 만든다. 작가의 과거 추억을 현실로 불러온다. 각각의 이야기 분량이 모두 다르다. 그는 분량의 제약을 받지 않고, 현실로 추억과 인연을 데리고 온다. 이 추억과 인연은 단순히 과거의 재현이 아니다. 현실로 오는 과정에서 작가의 현재 깨달음과 삶이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뒤로 가면서 속도가 점점 더디다. 어느 문장을 읽다가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힌다. 조용히 공감대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모두 마흔세 편의 글이 실려 있다. 이 인연은 사람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사물과 풍경과 추억과 사람들로 이어져 있다. 사람 이야기가 좀 적어 아쉬운 느낌도 있다. 하지만 나무 한 그루, 난 하나, 칼국수 한 그릇, 개구리 한 마리가 이 아쉬움을 채워준다. 이것들과의 추억과 새로운 경험과 느낌이 나의 닫힌 가슴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점점 삭막해지는 나의 감성을 조용히 두드린다. 몇몇 에피소드는 웃음을 자아내고, 그 힘겨웠을 과거가 머릿속에선 부럽기만 하다. 아마 실제 겪는다면 힘들어할 것이 분명한데 말이다. 

많은 이야기 중에 가장 가슴 속으로 파고 든 것은 두 인연이다. 하나는 적막이란 단어를 풀어낸 것이고, 하나는 형제에 대한 것이다. 적막이란 가슴에 새소리가 쌓이는 것이란 말에 처음 고개를 갸우뚱했다. 노년에 맞이한 손자들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조금씩 새소리의 의미가 와 닿는다. 나의 삶 속에서 가장 불효가 바로 이 손자임을 생각하면 더욱 가슴 아리다. 형제란 서로 닮아가는 정신의 노력이란 문장에서 다시 한 번 더 나를 돌아본다. 그가 살아온 인생과 내가 경험한 인생이 분명히 다르고, 환경도 다른데도 말이다. ‘형제란 서로 닮은 얼굴이 아니라, 서로 닮아가려는 정신의 노력’(166쪽)에선 내가 과연 그 정도 노력을 했는지 의문이다. 나만 보고 앞으로 달려온 삶이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그가 살아오면서 만난 수많은 인연들을 이야기하지만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가족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어머니에 대한 것이 많다. 이미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란 책까지 낸 상태인데도 할 이야기가 많은 모양이다. 그 때문인지 몇몇 이야기는 낯익은 듯하다. 가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자신의 성공을 말할 때는 왠 자랑! 하면서 살짝 콧방귀도 날려본다. 부럽다. 전체적으로 두루뭉술한 표현들이 많은데 삶을 살아오면서 날카로움을 닦아온 것인지 아니면 본래 천성인지 모르겠다. 나 자신이 신을 믿지 않지만 그가 성경에서 큰 도움을 받고 깨달음을 얻은 부분에서 살짝 부럽기도 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실천이 부럽다. 이 모든 이야기가 나로 시작하여 사물과 사람과 추억과 인연으로 나아가지만 결국 모든 것은 우리로 결국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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