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세이시의 책을 읽었다. 그의 소설엔 일본색이 강하게 풍긴다. 이것이 매력이지만 가끔은 트릭을 풀 때 난감한 경우가 많다. 항상 출간되면 관심을 끌지만 이번엔 더 눈길이 갔다. 그것은 요코미조 월드라는 곳에서 이 작품의 순위가 전 작품을 통틀어 2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특정 집단에서 좋아한다는 점은 늘 매력 있다. 그래서 평소라면 며칠을 두고 천천히 읽었을 텐데 이번에 받고 금방 달려들었다. 그리고 단숨에 끝을 보았다. 먼저 목차를 보면서 긴다이치가 늦게 등장하는 것이 조금 의아했다. 처음은 화자로 등장한 삼류 추리소설 작가 야시로와 그의 물주인 센고쿠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야기가 기이하다. 유명한 카바레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가 유명한 꼽추화가 하치야를 저격한 사건이 생긴 것이다. 왜 이 사건을 이야기한 것일까? 그리고 센고쿠가 모시는 주인집 후루가미 가문의 딸 야치요에게 이상한 편지가 온다. 목이 잘린 꼽추의 사진이 같이 온 것이다. 뭔가 사건을 암시한다. 작가는 일찌감치 하치야를 저격한 사람이 야치요임을 센고쿠를 통해 말한다. 야치요를 둘러싼 예언이 있다. 그것은 그녀가 꼽추와 결혼한다는 것이다. 저격을 한 그녀가 하치야를 병문안 가고, 이 둘의 관계는 가까워진다. 그런데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이 또 있다. 그녀의 오빠다. 그는 꼽추다. 예언에 의하면 그도 가능성이 있다. 이 둘이 한 집안에서 만나고, 충돌의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목 잘린 꼽추의 사진은 불길하다. 그녀는 삼류 추리소설 작가라도 도움이 될 테니 야시로가 왔으면 하고, 센고쿠는 그를 집으로 초대한다. 야시로가 간 후루가미 가문의 집은 괴이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센고쿠의 아버지는 술에 취해 칼을 들고 하치야를 죽일 듯이 달려들고, 야치요의 어머니 류는 동안의 미모로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센고쿠는 야치요가 자기 아버지의 자식이라고 생각한다. 가문의 당주인 야치요의 오빠 모리에는 이런 가정 때문에 야치요를 탐낸다. 두 꼽추는 한 집에서 충돌하고, 불안감을 더욱 깊어진다. 이런 불안감 속에 센고쿠는 아버지가 휘두른 칼을 금고 속에 넣어두고 싶어 한다. 열쇠는 자신이 가지고, 비밀번호는 야시로가 혼자 기억하게 만들면서 넣어둔다. 두 사람이 함께 하지 않으면 절대 금고를 열 수 없다. 이런 상황 속에 밤은 깊어지고, 몽유병이 있는 야치요는 밤에 취한 듯 걷는다. 저녁 식사 시간에 동참하지 않은 하치야는 자정이 다 되어 하녀에게 물을 가져달라고 한다. 그 전에 야치요는 그의 방으로 음식을 들고 간다. 이 밤 뭔가 일어날 것 같다. 결국 아침에 하치야의 방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그런데 목이 없다. 사체는 꼽추다. 모리에일까? 아니면 하치야일까? 확인을 위해 옷을 벗긴다. 저격사건으로 오른 다리에 총상이 있기 때문이다. 총상이 있다. 하치야다. 이런 생각은 모리에의 유모가 나타나면서 혼란 속으로 빠진다. 모리에 역시 총을 가지고 놀다 총상을 입은 적이 있는 것이다. 이 시체는 과연 누굴까? 그리고 이 둘은 불안감을 느끼면서 금고를 연다. 칼에 혈흔이 잔뜩 묻어 있다. 어떻게 된 것일까? 몽유병이 있는 센고쿠의 아버지가 꿈결에 모리에의 머리를 발견하면서 시체의 주인이 모리에로 일단락된다. 범인은 당연히 하치야로 좁혀진다. 과연 그럴까? 의문 속에 하나의 사건이 조용히 묻힌다. 이것으로 끝난다면 시시할 것이다. 작가는 무대를 다른 곳으로 옮겨 새로운 살인사건을 만들어낸다. 이번 살인사건에 긴다이치가 등장한다. 평소처럼 후줄근한 모습은 변화가 없다. 눈만은 빛난다. 야시로의 시각에서 모든 이야기가 풀려나오는데 후반에 잠깐 긴다이치의 의견이 들어간다. 이 의견은 방향을 잡는 것 정도다. 더 중요한 것은 이야기 너머에 있다. 전작들과 다르게 진행되었고, 비교적 일본색이 약해 빠르게 읽혔다. 후반으로 오면서 위대한 추리작가의 작품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나만 느낀 것이 아닌 모양이다. 일본에서도 문제가 되었다니 말이다. 이 무시무시한 살인들은 과거에 심어놓은 원념이 발전한 것이다. 물론 그 원념만이 원인은 아니다. 그것은 총알이고 방아쇠를 당기게 된 것은 다른 이유다. 한 사람에겐 가벼운 놀이자 장난인 것이 다른 사람에겐 삶을 뒤흔들 일인 것이다. 전쟁이 만들어낸 또 다른 괴물이 튀어나온 것도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분명하게 이번 작품은 세이시의 다른 작품과 다르다. 많은 논란이 된 공정성 문제부터 구성의 유사성까지 말이다. 하지만 변함없는 것 하나가 있다. 그것은 재미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