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의 이름을 옛날부터 자주 들었다. 그의 단편소설을 문학상 수상집에서 읽은 적은 있다. 하지만 다른 수상작가나 낯익은 작가에 비해 크게 매력적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그가 소설가로 생활하기보다 다른 일에 더 공을 들인 탓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의 작품을 읽을 기회는 줄어들었고, 이름만 기억하는 단계에 머물고 말았다. 그에 대한 마니아가 있는 것을 볼 때면 언젠가 한두 권 정도 읽어야지 하는 마음을 늘 품고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최근에 나온 이 책이다. 제목 그대로 여자들에 대한 작가의 평을 담았다. 평이라니 여자를 비평한 것처럼 보인다. 아니다.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자 중 그의 취향과 변덕을 반영하여 역사 속에서 남자보다 절대적으로 불공정한 비중을 조금은 바로 잡자고 한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여자들이 바로 서른네 여자들이다. 이 여자들은 다양하다. 실존인물이 아닌 경우도 있다. 작가는 이런 여자들을 통해 작가의 이런저런 생각들이 흥미를 끌고 깊이를 얻고자 한다.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그의 생각들이 나의 상식과 지식들과 부딪치고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준다. 서른네 여자 한 명 한 명을 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첫 여자가 로자 룩셈부르크라면 마지막은 강금실이다. 그 사이사이에 미스 마플 같은 창작인물이나 최진실 같은 연애인이나 사오리 같은 방송인도 나온다. 인류의 긴 역사 속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 여자가 있는 반면에 지극히 개인적인 친우에 의한 여자도 있다. 이 여자들을 이야기하면서 그는 그 시대를 풀어내고, 그 여자를 평소와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본다. 인문학적 지식은 한 사람의 삶이나 순간을 이야기하는 순간에도 결코 멈추지 않는다. 딱딱하게 고정되지 않고 유연하게 양쪽의 입장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입장 역시 분명히 한다. 이 과정들이 재미있고 흥미롭고 즐겁다. 짧지 않은 삶을 산 그가 말하는 여자들은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들일 것이다. 그 존재가 자신과 직접 혹은 간접으로 만났다고 하여도 말이다. 이것은 남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역사 속에 자주 다루어지지 않는 여자들을 다루었다. 그의 글 속에서 만나게 되는 여자들은 나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낯선 여자는 나의 무지를 질타하고, 낯익은 여자는 좀더 깊이 알고 싶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의 시대를 다시 생각하고,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게 만든다. 한계도 분명히 있다. 너무 많은 여자를 다루면서 깊이가 부족하다거나 개인적 취향에 너무 따른다는 것 등이다. 이런 한계는 그가 풀어내는 인문학적 지식과 이야기로 상쇄된다. 물론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취향이다. 그의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누리지 못한 재미를 결코 마음에 들지 않는 제목의 이 책에서 누린다는 것이 조금은 의외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삶의 재미난 부분 아니겠는가! 그리고 작가가 호평을 한 책들은 역시 나로 하여금 꼭 읽어야지 하는 열정을 불사르게 만든다. 또 사야할 책이 늘어났다.